오래된 자동판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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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0원·50원·100원·500원 동전만
내 밥통에 집어넣을 수 있다.
남의 재물 빼앗는 강도 칼 아닌
외과 1년차 전문의 건강하고 유익한 작은 칼로
요오드 칠한 부어오른 배 가르면
억누를 수 없는 어둠에 갇힌
짙은 고동색 번뇌의 코코아
옅은 하얀 희망의 프림
옅은 갈색 침묵의 커피
언제나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순백의 순결한 설탕
투명한 플라스틱 통 항상 먼지 머금은 채
제 각기 다른 키로 배 속에 말없이 서있다.
목에 이어지는 작은 심장에
수돗물 넣어도 좋고 정수기 물 넣어도 좋은 찬물은
뜨겁게 열 받아
누구나 밀크·크림·블랙·국산차 누르면
분말 가루 코코아·프림·커피는 설탕 알맹이와 섞여
작은 자궁에서 회전해
밀크·크림·블랙커피와 너무도 단 국산차 코코아
가는 호수에 자동으로
누구나 누르면 말없이 떨어지는
안으로 갇힌 순결한 작은 떨림 울리는 종이컵에 쏟아낸다.
내 오른편 차가운 심장에
24개 씩 갇혀있는
짙은 고동색 코코아와 닮은 고독의 콜라
사랑에 속은 선 분홍 빛 환타
짙은 갈색 묵념의 커피
사람들이 이상하게 찾지 않는 무심 색 보리차
누르는 사람에 따라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 달리하며 지하방에
안착해 차가움 손에서 손으로 이어준다.
오늘도 몇 사람 내 앞에서 1000원 짜리
지폐 들고 망설이고 있다.
우리 주인이 사무실에 앉아 있다고 말하지만
듣지 못한다. 거듭 세 번 말해야
주인을 찾아 동전 바꾸고 내 앞으로 와
내 입에 동전을 넣는다.
나는 지폐 받을 수 있는 대음순은 없고
오직 동전만 받을 수 있는 소음순만 가지고 있다.
남들처럼 지폐가 밥통에 쌓여있지 않지만 배가 부르다.
주인은 매일 내 호수 관 밑 방광에 사람들이
흘리고 간 식어진 뜨거운 물
사람들이 손 닦고 버리고 간 일회용 휴지로
방광 깨끗이 씻어 준다.
일회용 휴지로 닦아 주어도 만족한다.
내 방광은 매일 닦지 않으면 냄새가 진동해
사람들이 내 앞에 오기를 꺼린다.
새 주인은 내 방광 매일 닦아 주는 것을
두 달 만에야 알았으니 그동안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남들이 손 닦고 버린 휴지로
내 방광을 닦아도 냄새는 나지 않기에
불만이 없다.
잊어버린 듯 했는데 오늘 내 왼쪽 눈 옆에
하루 종일 걸어 다녀 바짝 마른 외판원이
작은 스티커 붙이고 주인과 얘기하고 있다.
스티커 붙인 자리에 스티커 붙이니
눈이 따갑기만 하다.
그들은 그것도 모르고 몰래 몰래
사람은 다르지만 붙인 자리에 똑같은 크기의 스티커
먼저 붙인 스티커 안 보이도록
떨어지지 않게 힘 있게 붙인다.
주인은 외판원과 말하며 애처롭게 나를 바라본다.
외판원은 실망한 모습 얼굴 밑 목 복숭아 혹에
숨기고 옅은 암모니아 냄새 풍기는 계단 내려간다.
나는 자궁 청소하는 자동 물 세척 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주인에게 고맙다고 거듭거듭 소리 지른다.
새 주인이 돈이 없어서 나는 기쁘다.
한 달에 한 번 어떤 때는 두 달에 한 번
주인은 내 밥통 꺼내가
주인 앉는 의자 방석에 쏟아 부어
나를 놀라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인은 그 돈으로
번뇌·희망·침묵·순결을 사랑마트에 가서 사고
고독·사랑·무념·무심은 순정마트에서 산다.
남는 돈으로 하늘마트에서 희망 담배 사
연기로 보이지 않는 물안개 만들어
하늘로 내품는다.
나는 오늘까지 잊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해 여름 7월말 무더위 날
나 때문에 전기가 합선되어
주인과 내가 암흑세계 헤맬 때
전화해도 불러도 오지 않는
대기업 서비스 맨 대신 온 작은 가게
직원에게 거금 이십만 원 들여
고독·사랑·무념·무심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내 냉각 유니트를
교체해 준 것에 대해 거듭 감사한다.
댓글목록
김영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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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히 다방에 간지도 얼마나 오래된지알수없네요
200원-300원 짜리 커피마시면서 대화나누는것도
낭망적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최승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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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판매기의 매력!
시나 소설도 ....
좋은하루 되세요
손근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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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 영혼과 육체에 어떤 자판기에 어떤 음료수가 들어 있을까 생각 해보게 합니다.
좋은 시입니다. 감사 합니다.
이선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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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자동판매기, 오랜된 자동판매기.. 오랜된 사랑처럼 좋은 시 감상하였습니다.
이순섭선생님 멋진오월 보내시고 오월의 창공에 오월의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이월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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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멋진 시입니다.
요즘 자판기의 커피값이 얼마인지 모르겠군요.
여기 자판기의 커피가 한국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오자마자 깨달았답니다.
한국의 자판기 커피가 가끔은 그립습니다.
이필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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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판기 속으로 들어 가 봐야 할까요? 아니면, 자판기를 제 마음에 넣어 봐야 할까요?
오늘부터 휴가랍니다. 오랜 만에 자연을 만끽하러 떠납니다. 휴게소에 들려 자판기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뽑아 마시며, 꼭 위의 시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선생님, 늘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글 뵐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