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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순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2건 조회 2,113회 작성일 2007-05-11 22:38

본문

화장실 휴지통에 피가 묻어있는 휴지가 있다.
사내는 날마다 남·여 화장실 버려진 휴지
가정용 20ℓ 국민 생활쓰레기 규격 봉투에 긴 집게로 집어넣는다.
피는 건전한 정신이 코팅된 장갑 낀 손에 묻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사내는 전기 코드 빠진
오래된 냉장고에서 생선 썩는 냄새 보다 더한
냄새에 얼굴 돌리고 숨을 멈춘다.
졸도해도 좋을 것 같은 냄새는 보이지 않고
문 밖으로 빠져나가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소화기 호수에 빨려 들어간다.
여자 화장실 양철로 만든 긴 집게는 더욱 길어져 춤추고
집게 끝에 피 묻히지 않는다.
남자 화장실 양철 집게 길이가 짧아져도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과 물 내려가는 소리에 몸 숨긴다.
빨간색 소화기 손잡이 밑으로 검은 짧은 호수
고개 숙인 채 여자 화장실 문 옆에서 하루 종일
보초 서있다.
소화기는 사내가 늦은 밤마다 여자 화장실 문 열어주면
문이 닫히지 않게 보초 서던 자리 떠나
문 기대고 문이 닫히지 않게 서있다.
하루에 한 번 뿐인 자리 이동
매일 매일 호수 통해 들어와 빨간 몸통에 채워진
누런 빛 냄새와 한 달에 한두 번 생산된 생선 비린내 섞인
보이지 않는 포말 되어버린 하얀 분말
포말 소화제 분말 커피로 변해
검은 호수 곧게 뻗어
남자 화장실이 여자 화장실로 바뀐 날
여자 화장실 쓰레기통에 뱉어 내고
남자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여자 스타킹에 숨어있는
냉장고 냉동실 얼음 깨지는 소리
귓가에 울리기 전 묻어 있는 냄새 빨아들이고 있다.
여자 화장실에 버려진 휴지
가정용 20ℓ 엷은 녹색 불투명 사생활 보호하는
국민 생활쓰레기 규격 봉투 거부하고
공업용 50ℓ 엷은 청색 규격 서민 쓰레기봉투 찾는다.
거부된 녹색 불투명 국민 쓰레기봉투에서
생각하지 못한 바퀴벌레가 갑자기 나타나
소스라치게 놀라 바퀴벌레 후려친다.
빨간 불 켜진 콘센트에 기어가는 바퀴벌레에게
모기 킬라 뿌린다.
바퀴벌레는 콘센트에서 떨어져
뒤집혀 버둥거린다.
뒤집힌 바퀴벌레는 다시 뒤집기가 어렵다.
선반에 놓인 화장실에서 끝까지 사용하지 않은
얼마 남지 않은 휴지 끊어 버둥거리는 바퀴벌레 감싸 누른다.
대충 눌러 죽여도 되련만
죽을 힘 다해 바퀴벌레 죽여 예쁜 곰 그려있는
일반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다시 꺼내
공업용 50ℓ 엷은 청색 서민 규격 봉투에 집어넣는다.
오늘은 화장실 휴지통에 피 묻은 휴지가 없다.
어디 있는지 모를 요도 길 찾아
남자 화장실 문이 여자 화장실 문으로 바뀐다.
사내는 지정된
일반쓰레기·음식물 배출 요일
일, 화, 목요일에 버리지 않고
쓰레기봉투에 피 묻은 휴지 안에 감춰져
포만감에 잠든 밤마다
새벽 1시 넘어 3시에 이르는 사이
손 세차하는 황 씨 땀 쌓인 소금 자루 옆에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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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월란님의 댓글

이월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요즘은 어딜가나 화장실 문화가 많이 청결해 진듯 합니다.
한국에 가보니 쓰레기 처리 과정이 장난이 아니게 복잡하더군요...
늘 추상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는 듯한 시인님의 글, 오늘도 뵙고 갑니다.
멋진 주말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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