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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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강경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334회 작성일 2020-09-13 19:32본문
아내가 부엌칼을 들고 와 갈아달라 한다
나는 마지못해 일어나 수돗가로 갔다
허다한 나날동안 생계형 전투를 치룬 칼은 잇몸만 남아
두부를 이기기에도 힘이 부쳐 보인다
숫돌에 비스듬히 칼을 대고 조심스레 밀고당긴다
서두르면 다치기 십상이다
문득, 잊고 있던 담임선생님처럼 시가 찾아왔다
무룻 시란, 칼날처럼 날카로와야 한다
칼끝이 까끌까끌 하도록 예민하게 날을 세워
장수처럼 휘둘러야 한다
날이 무딘 시의 문장은 결국
시인의 손목을 자르고 쓰러뜨린다
그러니 매일 면도하듯 칼을 갈아야 한다
철 수세미 같은 숫돌에 칼의 뼈가 으스러지듯
삶을, 갈아본 적 있던가
너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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