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집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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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순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702회 작성일 2021-02-24 16:58본문
물집의 크기
이 순 섭
물집은 걸어가는 고통의 갇혀있는 작은 집
발에 물집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픔 참고 견디어 물집이 생겼다
버리기 아까워 발뒤꿈치에
낡아버린 혁대 잘라 덧대 단단히 붙여서
물집이 생겼다
붙어있지 못해 떨어진 날에 걸을 때
불편했지만 아프지 않았다
어둠 속에 반창고에 가려진 물집은 보이지 않았다
일 년 넘게 찾아온 마네킹이 있는 자리
목이 있는 마네킹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목이 없는 마네킹은 구두를 쳐다보고
잘린 혁대 가죽을 덧대도 헐거워
바람이 스치는 걷는 발목에도 발의 부드러운 속살
견디지 못해 몸속 깊은 물을 가두어 버렸다
끝내 마네킹은 힘들게 서있지만 거리로 나가지 못해
회전출입문 밖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마네킹 빈속에 감춰진 얘기도 쓰지 못해
아니 썼어도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김없이 시간이 지나 이 자리를 떠나면
나는 발에 붙어있는 반창고를 때고
미완성 옷감 꿰매는 침(針)으로 물집을 터뜨려야 한다
반드시 침(針)을 머릿결에 몇 번 스치게 마찰 일으켜
날카로운 못다 한 독을 빼내야 한다.
15년을 함께 살아온 꽃술 달린 구두
내일 아침이라는 이름으로 버려야 한다
이 어둠 속 아쉬움에 구두 덧댄 가죽 어루만지고
물집을 더듬는다
물렁물렁하다
낡은 구두가 만들어준 물집이 터져
발목에 강(江)을 이루어 버린다
하얀 구름이 필요했다
구름이 걷히면 얇은 하얀 사(紗)
촘촘한 명부(名簿)를 고통 덮는 살 위에 덮는다
시간이 갈수록 거리에
내 구두 닮은
꽃술 달린 구두들이 활개 치게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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