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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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윤시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5건 조회 851회 작성일 2008-01-18 03:11본문
엿장수의 아들
행복별 윤시명
도심 한복판
붉은 눈으로 위협하며
차를 세운 거리에서
각설이 신명난 북채에
벌렁거리는 돼지머리 콧구멍 위로
키 큰 비닐 허수아비가 너울대고
세월에 가라앉은 이야기가 나풀거린다.
세월에 가라앉은 동네 어귀에서
어사행차인양 북소리와 함께
짤그랑 소리내며 엿장수 아저씨가 들어선다.
침 흘리며 따라붙은
동네 아이들 뒤에 세우고
온 마을을 돌아다니다
한 리어카 가득 채운 엿장수 아저씨,
정자나무 아래서
남은 엿가락 몇 개 부러뜨려
동네 할머니들이랑
아이들 입에 물려주고는
서울대에 입학한 아들이
장학금 받은 이야기를
해질 녘까지 풀어놓는다.
어느 겨울 날
그는 마을의 정자나무 아래에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은 채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누런 이빨 드러내고 침 튀기며 자랑하던
아들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친척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손에 들려
그는 화장터를 향해 떠나고
동네 멍멍개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 뒤안으로
동네사람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이 없었다고도 하고
아들이 양자로 보내졌다고도 하고
아들에게 버려졌다고도 하고
그와 그의 아들이야기는
동네의 전설이 되어
바람을 따라 떠돌다
세월에 가라앉아 버렸다.
그는
그의 절망을 지탱해 준
아들 이야기를 끌어안고
그렇게 말없이 떠나갔다.
비닐 허수아비 사이로
그가 자랑하던 아들의 이야기가 나풀거린다.
추천6
댓글목록
이월란님의 댓글
이월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아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어릴 때 빈병으로 엿바꿔 먹던 생각 납니다.
미니도끼같은 것으로 찍어서 잘라내어 주시던 노란엿이 맛있었지요...
정유성님의 댓글
정유성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버지와 아들과의 묘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저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예전엔 참 스산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깊이있는 글 뵙고 갑니다.^^*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의 절망을 지탱해 준
아들 이야기를 끌어안고
그렇게 말없이 떠나갔다>
부모님들의 삶이란~~ ㅠ.ㅠ
고윤석님의 댓글
고윤석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부모님의 자식사랑을
너무 깊이 표현하여 가슴이 찡합니다..행복하십시요..
김성재님의 댓글
김성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들이 잘 살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아버지...
즐감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