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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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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한관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2건 조회 1,857회 작성일 2007-09-07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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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사(戰士· )

          한관식




비는 그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섬덕섬덕 바람이 흝고 지나갔다. 우리가 건너온 저쪽은 지면이 얕아, 물살이 넘실거리면서 곧 잠겨 버릴 듯 적막의 숲으로 울창해지고 있었다. 누캉의 판단은 역시 옳았다. 우기(雨期)가 지나면 우린 다시 저 땅을 밟을 것이다. 필요 없고 약한 생명체를 솎아낸 자리에 새 생명들로 무성할 것이다. 그 생명들은 우리와 더불어 공생하며 자연을 이룰 것이다. 누캉은 티티를 불렀다. 비다. 지금처럼 속절없이 오는 비속에서 생존하기위한 대가는 클 것이다. 다행으로 오늘 만난 악어는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무사히 우리로 만날 수 있는, 애송이들이었다. 비다. 이런 빗속에서 결정하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허나 처음의 판단을 믿어라. 조금만, 하고 기다리기엔 너의 어깨가 무겁다. 종족의 미래가 꿈틀거리며 너의 행보를 주시할 것이다. 비다. 반드시 그칠 것이다. 그만큼 소생하거나 소멸할 것이다.

누캉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는 티티의 뒷모습에서 멀구슬 열매 같은 아릿한 성욕이 묻어나왔다. 툴. 뭐야?  지금 이 상황에서.

누캉이 찾은 곳은 아름드리 콤푸레타 나무에, 하늘의 빛이 꽂혀 최상의 보금자릴 빚어낸 곳이었다. 우리가 모두 자릴 했을 때 서로의 체온이 사슬을 엮으며 공평하게 데워지고 있었다. 새끼들은 암컷의 품에서 치열했던 하루를 잊고 유순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어쩌면, 홀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서 흙의 틈새로 새싹을 틔우는 그런 세월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 지쳐있는 누캉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모로 눕거나, 앉은 채로 머리만 떨구었거나, 엉덩이를 하늘 가까이 솟구쳤구나, 저마다 탈진한 모습은 비슷했지만 그러나 누캉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뜨거운 입김을 품어 내고 있었다. 모두를 깨우기 위해 상체를 일어 켰을 때 누캉의 꼬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아서라. 대장. 지금 저들의 질 좋은 잠을 방해하기엔 난 살아온 세월이 너무 많아. 빼곡히 들어찬 세월로 인해 이젠 여백이 보이지 않아. 내 고통과 아픔은 한때의 몰입으로 남겨두고, 얼마 있지 않아 내 죽음은 기대치의 충만으로 대신해주면 좋겠어. 이 땅을 살다간 숱한 코주부 원숭이의, 주름진 한 마리의 일생이었다고.  긴장을 늦춘 탓일까. 갑자기 심한 어깨통증을 느꼈다. 아비세니아 강을 건널 때 악어 꼬리의 충격이, 이제야 쑤셔왔다. 누캉의 눈꺼플이 반쯤 열려 있었다. 엎드려 자고 있는 티티만이라도 깨워야겠다는 생각에서 앞발로 툭 건드렸다. 티티는 엉덩이를 실룩이며 나를 빠안히 쳐다보았다. 내 눈망울에 고여 있는 슬픔을 읽었는지 맥없이 아래로 머리를 떨구었다. 봐라. 죽음과 결합을 위한 누캉의 마지막 조명을. 티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희뿌옇게 빗속에서 그려지는 풍경의 일환으로 등 돌린 아비세니아강의 물살이 왠지 수그려들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누캉은, 절실히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긴 코를 실룩이며 천근 무게의 눈꺼플을 닫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대장. 목젖에 걸려 꺼져가는 누캉의 목소린 하마터면 빗소리에 묻혀 들 뻔했다. 나는 상체를 굽혔다. 티티는?  그는 역시 티티를 찾고 있었다. 이승에서 자신을 대신하고, 빛나는 코주부 원숭이의 역사를 다시 엮을 후계자에게 실오라기 같은 삶의 선상에서 둔중한, 마침표를 찍기 위한 일환이었다. 티티는 아직 여려, 가까이 접근할 엄두를 못낸 체 멀찌감치 떨어져 급물살 속에 튀어 오르거나, 혹은 솟아오르는 피라니아의 무리를 보고 있었다.  피라니아는 사나운 이빨을 가지고 있어 언제든지 우리를 위협하는 육식 물고기였다. 급물살의 강물 속에 오랑우탄이 거푸 거푸 아래로 떠내려 오고 있었다. 놓칠 수 없는 목표물을 향하여 피라니아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워졌다. 퐁퐁퐁.  튀어 오름. 솟아오름.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한마리가 천연덕스럽게 물 밖으로 온몸을 드러내었다. 마침내 녹색 비늘이 빗물을 타고 빛나고 있었다. 잠시, 물 밖으로 나온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다가, 흥건한 퍼득임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었다. 대장! 누캉의 잠겨 들어가는 목소리를 따라 머릴 돌리다가 티티와 눈이 마주쳤다. 아, 언제 저렇게 성숙하였나. 그제서야 티티의 겨드랑이에서 암내를 맡았다.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었다. 내 존재의 확인이기도 했고, 더 강한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이기도 했다.  티티는 내 의도를 읽었는지 수컷을 받아들이기 위해 엉덩이가 벌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성큼 성큼 다가가 티티의 암컷에 내 수컷을 밀어 넣었다. 그 자리. 누캉의 죽음과 결부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비세니아강을 건너기 위해 저마다, 소스라친 두려움의 하루였다고 역시 결부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 물 밖으로 나온 한 마리 육식 물고기. 그 흥건한 아우성에서 시작 되었다. 태초의 육지의 생명체는 저렇게 만들어 졌을 것이다. 이 황당함과 두려움이 범벅이 되어 필사의 노력으로 퍼득이고- 퍼득이고.  아가미를 적셔줄, 강물은 저렇게 도도히 흐르는데, 이 펄떡거림은 진정 무의미한 것인가. 풍덩 뛰어들 것처럼 가깝다고 여겨졌는데. 멀다. 저러다 날지 않을까. 참으로 멀다.

 


  티티는 어디로 갔을까.

생명을 다한 나뭇잎이 바람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가난한 오후였다. 햇살을 따라 힘껏 몸짓하던 나뭇가지들이 고개를 숙이면서 이내 적막 속에 잠겨 들었다. 넉넉한 햇살을 등과 배에 마음껏 담아 놓으며 혹은 구르기도 하면서 서로 재잘대던 가족들도 쥐꼬리망초 나무 곁에서 여위어진 햇살을 확인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맹그르브숲 사이의 작은 수로에 날개를 접은 새가 뱀을 포획하고 있었다. 뱀의 머리는 새의 부리를 통해 소멸되고 있었고 미처 삼키지 못한 꼬리만이 요동치면서 물보라를 만들고 있었다. 마치 긴 새의 혓바닥이 물을 가르기 위한 연마를 하고 있는 듯한 풍경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멀구슬 나무는 어울렁더울렁 하늘을 향했다. 또 다른 열매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으로 멀구슬이 터지고 가시처럼 생긴 홑씨들이 일제히 땅에 박혀든다. 살아남은 씨앗이 싹을 틔우면서 보기에도 빈약한 나무로 뿌리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는 나무를 만나고 서로를 꼭꼭 감싸 안으면서 아름드리나무로 자리매김 된다. 오래전 맹그르브숲과 더불어 익숙한 구성원으로 살아남기까지.

얽히고설킨 멀구슬 나무의 틈새를 기회로, 안착이 용이한 곳에 내 영토는 비롯되었다. 나는 곧잘 식구들에게서 벗어나 이곳에서 숲을 관망하길 고집하였다. 식구들에게는 나에 대한 신비감을, 나에게는 질기지 않는 고독감을, 따라서 영토와 권좌의 확인이기도 했다. 지금은 사뭇 다른 연민으로 어깨까지 늘어뜨린 채 앉아 있다. 바람이 머무는 곳에 잎 넓은 꼭두서니 나무가 제법 춤을 추고 있었다. 뱀의 꼬리까지 말끔하게 뱃속에 숨긴 새는 낮게 날아올라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졌다.

티티는 어디로 갔을까.

불쑥 불쑥 늘어져 있는 넝쿨을 잡고 나무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현란하게 옮겨 다니는 슈샨. 나뭇가지의 끝을 향하여 사뿐 사뿐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가 휘어져, 반동이 되는 순간 튕겨져 올라 다른 나뭇가지로 옮겨 가는 이미. 탁월한 수영으로 아비세니아 강을 헤엄치는 치키. 내 몸의 곳곳을 정성껏 뒤적거려 벌레를 잡아내는 노미. 그리고 콤푸레타 나무 아래서 쉼 없이 몽상에 잠기길 좋아하는 티티. 해가 코끝을 간지럼 먹혀야 느지막하게 일어나는 우리와는 달리 티티는 해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지는지를 가슴에 담고 있었다. 때로 감히 근접 할 수없는 달과 별과 구름 사이의 세월을, 노래로 들려주곤 하였다.

맹그르브 숲은 한낮의 열정이 쉼 없는 보챔도 없이 소리 없이 고여 들고 있었다.  우리가 이 섬을 떠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정적 안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었다. 정적이 표현이 적당한, 습지가 많은 갯벌이 한없이 펼쳐져 있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뱀과 악어뿐이었다. 언제부터 이곳을 서식지로 자리 잡은 지 누캉은 알고 있었다. 우기(雨期)를 피해 옮겨 다니면서 먹이의 군락지를, 무관한 비와 바람의 보금자릴 누캉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맹그르브 열매로 각인 되어질 만큼 보배로운 누캉은 아쉽게도 가장 연장자로 그는 죽음을 홀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보르네오섬을 떠나는 날. 티티를 지목하였다. 티티는 비록 암컷이지만 지혜와 명석을 갖추고 있었다. 비의 반대 방향에서 항상 우릴 인도할 것이며 삶과 죽음의 선상에서 슬기롭게 대처하여, 오래전부터 이어온 역사를 써내려갈 것이다.

보르네오섬의 영토에 뿌리박기까지 질곡의 수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척박한 영토에서 질병과 맹수와 기아(饑餓)그리고 인간의 위협으로 우리는 낙원을 찾아 긴 여행길에 올랐다. 자바해와 셀레바스해를 헤엄쳤다. 끊임없는 종족 번식의 사명 앞에서 본능적 차원을 넘어선 치열한 저마다의 소명이었고, 소스라치는 파도 앞에서도 꿋꿋함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스흐와네오 산맥을 넘을 땐 기진한 숨소리, 절뚝거리는 네다리-그것은 무언의 약속이었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그렇지만 멈출 수 없다는.

그렇지만 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코주부 원숭이의 터를 만나기 위한 몸부림의 일갈이었음을. 쓰러져 낙오되고 눈에 띄게 줄어드는 종족을 뒤돌아 볼 새도 없이 이번엔 서쪽으로 카푸아스, 남쪽으로 바리토, 동쪽으로 바하우의 큰 강을 따라 힘겹게 거슬러 오다가 범람하는 강줄기에 휩쓸려, 몇몇은 다시는 아침 햇살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남동쪽의 마하캄강에서 살아남은 우리를 확인하고 기쁨도 잠시, 목을 축인 다음 걸음을 재촉하여 보루네오섬에 입성하게 되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역사를 누캉은 그전에 누구에게 전해 듣고 누군, 그전에 또 누구에게, 다만 얼마나 오랫동안 누구에게가 이어졌는지 알수 없지만 보루네오섬에 정착하기 까지 자긍심의 역사는 불씨처럼 서로의 가슴에, 보존되고 있었다. 

그날, 빛과 소리가 뒤범벅되어 분탕질 되던 하늘 아래에서 누캉은 무리의 선두에 섰다. 나는 무리의 가장 후미에서 좌우를 살피며 이동이 시작되었다. 높은 곳을 피하고, 나무가 우거진 숲은 허락되나 휑한 나무의 곁에선 절대로 지체하지 말고, 눈에 띄는 들판에서 상체를 숙이고 가급적 빠른 걸음으로 벗어나야 한다. 하늘의 노한 소리가 어느 곳 하나 닿지 않는 곳이 없으며, 하늘의 부릅뜬 빛은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오줌발처럼 시시각각 꽂히고 있었다. 새끼들은 암컷의 품속에 매달려 공포에 대롱대롱한 움직임도 잦아지고 있었다. 비는 사선으로 뿌려지고 있었다. 주위를 경계하며 전진하던 나는 빗방울이 굵어지자 힐끗 누캉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 두려운, 그래서 선두다운 면모를 흩트리고 있지는 않는지, 확신에 찬 걸음걸인 여전한지 나는 차라리 훔쳐보았다는 것이 옳았다. 지금 누캉을 향한 불신은 따라서 약해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엄연한 확인이었다. 마음을 읽었는지 누캉은 선두에 서서 내 눈빛과 마주했다. 평상시 같으면 대장에 대한 예(禮)로 마주친 눈빛을 거두어 가는데, 쉽사리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내 눈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자지러지는 하늘의 소리와 날캄한 하늘의 빛과 누캉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서로 아귀가 맞게 천연덕스러운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대장이 된 이래 처음으로 마주한 눈빛을 양보하였다. 보란 듯이 누캉의 선두에서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앙상한 앞다리며 민망한 배불뚝이까지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던 꾀죄죄한 누캉의 몰골이 철갑의 악어가죽으로 무장한 것처럼 굳세고 위풍당당하게 보이는 나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마침내 아비세니아강 앞에 이르렀다. 누캉은 무게를 느낄 만큼 젖은 털을 힘 있게 요동쳤다. 무리 중 몇몇도 기다렸다는 듯 요동을 치자 고른 입자들이 사방에 뿌려지며 작은 무지개를 순간적으로 빚어내었다. 아비세니아강은 거친 숨을 몰아쉬듯 물살이 속도를 더하고 있었다. 누캉은 치키를 불렀다. 동강난 바람이 깍아 지른 바윗돌에 부딪혀 소용돌이를 그려내고 있었다. 건너야 한다. 물의 속도를 한풀 접혀지는 곳에, 몇 마리 악어가 곧이어 벌어질 축제의 여흥을 위해 눈만 껌뻑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캉은 재차 치키에게 다짐을 받았다. 네가 선두다. 치키는 꼬리를 곤두세웠다. 쥐꼬리망초나무가 부산하게 흔들렸다. 가장 높은, 나뭇가지를 잡고 몇 번 원을 그리며 돌다가 곧장 강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악어들은 다투어 아비세니아 물살을 역류하며 빠르게 헤엄쳐왔다. 치키와의 간격이 좁혀지자 슈샨을 뛰어들게 하였다. 한 마리의 악어가 방향을 틀어 슈샨을 향하는 것을 본 다른 악어들이, 가속만 붙으면 쉽게 덥석 물수 있는 치키를 버려두고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누캉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티티를 보호하라는 부탁과 함께 보기에도 아찔한 물살의 옆구리를 차면서 뛰어들어, 악어의 사정권 밖을 교묘히 헤엄쳐 건너고 있었다. 첨벙첨벙 뛰어들고 있는 군침 도는 먹잇감에, 악어들은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생존을 향한 끝없는 본능, 저마다 가슴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삶에 대한 양보할 수 없는 애착으로, 아비세니아강의 투정 섞인 물살도, 냉혹한 악어의 위협도 이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몸에 언제부턴가 밀착되어 있는 티티를 보았다. 두려움과 공포의 떨림이 내게 전해져왔다. 건널 수 있을까? 대장. 나는 큰 코를 덜렁덜렁 흔들어 보였다.  물론이지.

강의 건너편에 자리 잡은 몇몇은 옹성거리며 모여, 다시 만나기를 다시 만나 보르네오섬의 일상의 구성원이 함께 되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티티를 앞세웠다. 넌 앞만 보고 나가야 한다. 뒤는 내가 지켜준다. 반드시.

첨벙. 물보라가 일었다. 초점 잃은 물살도 잠시 굵어진 빗발에 힘입어 강은,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지체 없이 티티의 뒤를 따랐다. 놓쳐버린 먹잇감이 많아지고, 그나마 몇 마리 남지 않은 먹잇감마저 교묘하게 피해 흙을 밟는 모습에서 이젠 신경질적으로 악어들은 서두르고 있었다. 티티에게 돌진하는 악어를 교란시키기 위해 비명을 지르면서 옆구리를 걷어찼다. 잠깐 방심했을까. 악어의 꼬리가 내 어깨를 철썩 내려쳤다. 쿵하고 자지러질 듯한 통증과 대장으로서의 구긴 모멸감으로 헤엄을 멈췄다. 대장! 대장! 그 외침을 들었다. 대장! 대장! 그 외침 속에 포기할 수 없는 미래가 다가왔다. 살아야 한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악어는 입을 벌리고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나는 흐르는 물살의 반동으로 튕겨져 올랐다. 악어의 턱뼈가 공허하게 덜그덕 채워지는 소리를 들었다. 가자!  강물을 벗어난 티티가 젖은 몸을 털며 넙적 다리를 세워 상체를 일으키고 있는 강의 건너편을 향하여 헤엄쳐 나아갔다. 기진한 악어들은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한 체 일제히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거기에 샤킬이 미동도 하지 않고 거친 물살을 가르며 지켜보고 있었다. 샤킬이다. 누캉은 젖은 몸을 털기 위해선지, 단지 샤킬로 인해선지 알 수 없었지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떨림은 지루할 만큼 길다고 느껴졌다. 그랬었구나. 누캉의 목소린 빗물에 젖어있었다. 우리가 생사를 건, 아비세니아강 건너기에 희생자가 없었던 것은 악어들이 애송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야.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삶의 통과의례를 천만다행으로 주입시키는 자리였어. 얼마나 많은 동족이 샤킬의 튼튼한 허리의 자양분이 되었는가를. 얼마나 많은 연약한 동물들이 샤킬의 명성에 희생양이 되었는가를.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샤킬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힘의 원동력이 되었는가를. 누캉은 포옥 한숨을 쉬었다. 뿔 달린 악어. 샤킬의 이마엔 쇠꼬챙이가 꽂혀 있었다. 인간과의 혈전에서 남겨진 이력서였다. 그런 샤킬이 몸을 틀어 아비세니아강의 하류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 뒤를 성과 없이 입맛만 다신 악어들이 조금은 경망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 샤킬의 존재는 아비세니아강을 한껏 위축되고 볼품없이 만들어 버렸다.

 


티티의 몸속에서 내 숫컷은 생명을 노래하고 있었다. 아침 해를 몰고 오는 비비새의 톡톡 튀는 목소리가 이랬던가. 기쁨이 모여들었다. 모여들어 원을 그리고 쉼 없는 숨 가쁨.  알토란같은 은밀한 전율. 멈출 수 없는 환희. 피라니아. 피라니아. 피라니아. 환희의 축제. 서로의 끈끈한 정으로 뭉쳐진 포만한 기쁨은, 마침내 화산처럼 분출되고 티티의 숨소린 얕게 가라앉았다. 멀지 않다. 누캉의 죽음과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은. 참으로 멀지 않다.

비는 이제 제 몸을 접었다. 몇 방울의 물기조차 나뭇가지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스산하게 흩어졌다. 아비세니아 강물은 육중한 몸을 뒤척이며 지면이 낮은 곳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맹그로브 숲은 지금 꿈을 꾸고 있었다. 비가 가져다준 반란 속에서 밀림과 습원으로 덮여 행동반경의 제재를 가함과 동시에 물질적 풍요와 군락지 형성에 기여하고 있었다. 숲으로 뿌리 내리기 까지 숱한 밤과 낮이 덧칠되고, 켜켜히 쌓여 있는 세월의 잔해로 마침내 자리매김 되었다.  틀림없이 물은 낮은 곳으로 임하였다. 흘러가고 고여 들고, 반복이 거듭 된 곳은 그만큼 깊이를 더한 늪이 만들어 졌다. 그 늪 주위로 울타리처럼 하늘보다 더 먼 곳을 향하여 솟아오른 꼭두서니 나무가 있는가 하면, 세포액의 삼투압으로 다투어 늪으로 뛰어 들듯이 제 몸을 구부려 딱하게 자라는 쥐꼬리망초 나무들이 무성하게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 늪의 공간을 배려하여  숲의 위치는 더욱더 탄탄해져 생명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누캉은 모로 누워 간헐적인 숨소리마저 내밷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나는 저 밑바닥에서 걸러낸 슬픔의 울음을 준비하였다. 교미를 끝낸 티티는 자신의 몸속에서 마악 또아릴 틀고 있는 온기를 잃지 않으려고 배를 감싼 체 구석으로 찾아들고, 식구들의 요긴한 잠의 넝쿨을 걷으며. 걷어내면서.

내 울음을 받아 주소서. 한때는 동요 되지 않는 일관성으로 앞으로 나간 불꽃같은 생애였고, 차마 애달픈 육신의 비어있음으로 허물 같은 죽음으로 고즈넉하니, 모두가 부질없음으로 그만큼 허망합니다. 보소서. 아비세니아 강물의 범람이 가져다준 평정의 내일을. 그 숱한 세월 속에서 치열했던 나날이 무릇 얼마며 코주부 원숭이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파수꾼의 몫이 얼마였습니까. 거두어 주소서.

태초에 보르네오섬을 만든 이여. 아비세니아강보다 더 넓고 푸른 강이 있다면 그것은 조물주의 뜻일 것입니다. 허나 그런 강이 진정 있을까요. 저 물살을 수용하기에 너무나 벅차, 쏟아내고 흘려버린 물의 양만으로도 우리들의 일용할 먹이와 터전이 제 살을 깎아 먹듯 좁아지고 있는데 어찌 순순히 물 한 모금 하늘 한번 하면서 지켜보리오. 단언하건데 처음도 끝도, 저 도도한 아비세니아강뿐일 것입니다. 지친 몸을 적시며 추스르고, 타는 목마름을 적시며 해소하고, 늘 우리의 화제가 되었던 아비세니아 강물에 누캉을 보냅니다. 누추한 코주부 원숭이의 가계를 일구기 위해 그의 육신은 한시도 바람 잘날 없어 볼품없지만, 지혜와 서슬만큼은 만든 이를 닮았을 것입니다.

이제 저마다 일어나 누캉의 죽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듬성듬성 털이 빠진 누캉의 꼬리를 잡았다. 분명한 방향이 정해진, 내가 끄는 데로 빗물이 고여 있는 습지를 가르며 질질 끌려왔다. 하늘의 빛과 소리가 세상을 흔들어 놓을 때도 선두에 서서 우리를 인도하던 누캉은, 단지 죽음이 가져다준, 다함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수컷들은 내 뒤를 따랐다. 콤퓨레타 나무 안에서 암컷과 새끼들이 약간은 불안한 표정으로 어수선하게 배웅을 하고 있었다.  꼬리에 끌려가는 누캉의 몸뚱인 흙과 빗물이 묻어 데데해졌지만 그의 이력을 아는 우린 아침 햇살처럼 빛나 보인다는 것을 결코 부인하지 않았다. 마침내 아비세니아의 푸른 강 앞에 멈췄다. 우린 원을 그렸다. 나는 큰 코를 한번 추스렸다.

이제 보냅니다. 저 강물이 끝나는 곳까지 다다랐을 때 그의 육신은 얼마만큼 남을지 알 수 없습니다. 피라니아와 악어의 굶주린 뱃속을 채워주고 채워주고, 그마저 넉넉지 않아 보챈다면 피를 토한 이 울음마저 가져가소서. 그러나 누캉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역사에서 시들지 않고 내내 꽃피게 하소서. 바라오니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조물주여, 제발 저버리지 말아주소서. 구와아앙

발끝에서 길어 올려진 내 울음의 외마디는 큰 코를 울림통으로 하여 공명되어져 아비세니아 강물을 넘실거리게 하였다. 맹그로브 숲을 흔들며 물기를 털어내게 하면서, 보르네오 섬 가득 그의 죽음을 알렸다. 우린 힘을 모아 강물에 누캉을 보냈다. 천천히 그리고 몇 번. 모습을 드러내던 누캉은 곧이어 저 강물이 되었다.

대장, 우린, 우리의 앞날은, 순탄할까?

나는 뒷발로, 고개 숙인 수컷을 걷어찼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캑. 비명과 함께 저만치 나동그라졌다. 아직 대장은 죽지 않았어. 티티가 누캉의 전부를 물려 받았으니 그다지 걱정이 없을꺼야. 알았지!  양미간을 찡그리며 내 위치를 확인 시켰다. 우기(雨期)가 끝나고 물살이 옅으지면 다시 맹그로브 숲을 밟을 것이다. 대지를 감싸 안은 어진 안개가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때까지 삶의 누각을 지어며 버틸 것이다. 품을 듯한 안개가 석양의 단내를 헤치며 어둠을 영접하고 있었다. 우린 다시 콤푸레타 나무 안으로 들어 왔다. 암컷과 새끼들이 똘망똘망하게 초조한 눈빛을 한, 기다리는 곳으로.  삶은 말아 쥐지 않아도 오고 가는 것. 닮은 몇 닢의 아침이 바람에 흔들리다 떨구고 간 숨결마냥 게슴츠레 티티의 배가 불러오고, 맹그로브 숲으로 가기위해 키 작은 물살을 찾아 아래로 우린 이동하였다. 고온 다습한 적도 우림 기후로 그다지 일교차가 크지 않아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 내내 이동이 원활하여 서두르지 않고 느긋한 성격을 저마다 가지고 있었다. 강의 하류에는 곳곳에서 인간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만은 호의적이라서 인간은 앞발로 흔들어 주기까지 하였다. 인간들은 앞발을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앞발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여 쳐다보는 것만으로 경이로웠다. 어쩌면 우리의 앞발도 저렇게 진화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그 증거가 우리도 뒷발로 설수 있지 않는가. 대장, 그런 날은 올까? 나는 인간에게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 틀림없이.

틀림없이 그런 날은 올 것이다. 몇몇의 인간만이 현란한 손놀림을 가졌다면 피나는 노력으로 경지까지 도달했을 것인데 털 없는 인간들은 죄다 앞발로 삶의 틀을 짜고 있었다. 그렇다면 태어나 그 익숙함으로 단련되어, 어느 누구에게도 헤엄을 배우지 않았는데 우리가 헤엄을 치고 있는 것처럼 무엇인가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가능성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다면.  노력의 하나가 새끼를 낳으면 노력의 넝쿨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면면이.

하나가 되자 .비록 헤엄치기에 뒤떨어져서 나무를 타고 흘러가고 흘러와도  맹그로브숲, 아비세니강과 보르네오섬 안에 인간을 대적할 천적은 없지 않는가. 앞발의 현란한 기술을 익히기까지, 지금 서툴더라도 그만큼의 땀이 필요 했을 것이다.

대장. 눈에 띄게 부른 배를 불쑥 내보이며 티티가 불렀다. 과연 인간의 튼튼한 위치가 앞발만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무슨 소리? 뜨아한 표정으로 다투어 티티를 쳐다보았다. 꼬리 끝에 붙은 벌레만도 못한, 앞발은 단지 보이는 힘이고,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힘은 바로 머리라는 사실.  머리? 우리도 있잖아.

티티가 걸음을 멈췄다.

우리도 있잖아 하고 대답하는 그 현실이, 인간에게 접근하는 거리를 한없이 막막하고, 멀어지게 하고 있어.

밤이 백 육십 여섯 번 찾아오면 티티는 새끼를 낳을 것이다. 나와 티티를 닮은 새끼가 나온다면 인간을 향한 소망에 한걸음 다가서는 것이리라. 나는 부지런히 앞발을 사용할 것이다. 잡는 것부터. 무엇이든지 잡고 움켜잡으면서... 뒷발은 허벅지를 길러 앞발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내 새끼에서 이루지 못하면 새끼의 새끼가 다시 그 새끼가. 조급하게 생각하지말자.

드디어 우린 맹그로브숲으로 찾아들었다. 우기가 지나가면 땅은 더욱 더 다져져, 나무는 곰실곰실 잎을 달아 숲의 기쁨이 되고, 둥지를 튼 새소리, 바람의 어깨너머로 얕은 햇살, 그만큼의 풍성함으로 가득했다. 아비세니아강은 그윽하게 흘러 광폭한 먹이사슬도 묻혀들어 가고 있었다.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여전히 나무 위를 옮겨 다니는 슈샨, 나뭇가지 끝의 반동으로 솟구쳐 오르는 이미. 아비세니아 강을 타는 치키. 몸을 뒤져 벌레를 잡는 노미. 그러나 하루의 몽상 대신 불러오는 배를 아끼는 티티. 나는 티티를 축으로 일상을 열어놓고 있었다. 다만 그 축의 선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것은, 앞발의 연마를 위해 개미집 앞에서 시간을 흘려놓는 한낮, 뿐이었다. 발가락으로 개미잡기였다. 개미 중에서 몇 마리를 덥썩 잡아 올리는 것도 처음엔 대단한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마침내 개미 몇 마리가 발가락 끝으로 확실히 쥐어졌다. 그리고 한 마리의 목표물이 정해졌다. 빠르고 정확하게 쥐지 못하면 개미들 속에 섞여버려 목표물을 골라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거듭 되는 실패. 좌절, 인내심의 극한 상황에서, 뒤돌아버리고 싶었던, 나는 밤이 백 육십 번 찾아온 그날, 숨소리마저 거친 티티의 배웅을 받고 나와 그 토록이나 갈망하던 목표의 개미를 쥐어들었다.

병정개미는 무기력한 자신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내 발끝을 물었다. 허지만 인간에게 한걸음 다가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티티를 떠올리며 달려가는 나는 결코 개의치 하지 않았다. 한낮의 햇살은 수직으로 숲을 뒤덮고 있었다. 내 걸음은 빨랐고 엷은 바람은 형체도 알 수 없이 잔 나뭇가지에서 묻어나왔다. 모두가 숨죽인 한낮의 열기를 따라 나는 신이 났다. 풍성한 나뭇잎으로 포식한 식구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졸음에 겨워하고 있었다.  티티! 내 목소리는 탄성에 가까운 부르짖음으로 갑자기 호흡이 멎는 느낌을 받았다. 개미를 찾아 숲으로 들어가다가 강 상류에서 샤킬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슈샨을 앞세워 강을 향해 달렸다. 나무를 옮겨 다니면서 먼저 도착해 있는 슈샨의 표정은 어두웠다.

티티는 어디 갔을까.

강은 흐르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만으로 내 두려움은 한없이 밀려왔다.  티티를 목 놓아 불렀다. 피를 토해도 시원치 않을 그리움이었다. 물가에서 목도리 도마뱀을 발견한 슈샨은 내 절절함에 감염된 듯 울음 섞인 소리로 물었다. 배부른 코주부 원숭일 보지 못했나?  봤어. 봤어.

나는 그 소리에 목도리 도마뱀의 목을 움켜잡았다. 컥 너무해. 컥 악어였지. 뿔 달린 악어가 물어갔어.

희망이 없는 절망이 쿵 하고 가슴에 꽂혀드는 실팍한 아픔을 느꼈다. 나를 지탱하고 있던 힘이 일순간 달아나 버리고, 뒷다리는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목도리 도마뱀은 이 순간을 놓칠세라 발바닥이 불에 데인 듯 지그재그로 뛰어갔다.  멈췄다. 바람도 강물도, 내 사랑도 소망도 권좌도 시간도, 버팀도 지킴도 부질없음이라. 멈췄다. 낙원의 향기도, 꿈 꿀 수 있는 시작도, 비롯됨의 처음도 와르르 무너진 채 스며들고, 멈춤을 확인하며 하늘 가까이 일어섰다.

나는 인간처럼 끝이 날캄한 나무를 쥐어들었다. 대장, 무모하지 않을까. 남은 우리의 존재는? 단지 티티의 복수 때문이라면, 여기에서 멈춰줄 수 없을까.

내 의도를 읽은 슈샨이 말리기도 전에 아무 말 없이 아비세니아 강기슭에 몸을 담그었다. 와라. 샤킬. 어쩌면 지금이 가장 승산이 있을 것이다. 복수심에 불타 끓여 오르는 힘과 티티를 소화하기 위해 둔해진 샤킬을 감안 한다면 지금이 가장 적기인 것이다. 우린 이 땅에 찾아 들었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했던, 그 숱한 나날들이 멀구슬 열매처럼 주렁주렁 스쳐 지나갔다. 이제 작별하여야 한다. 인간이 되기 위한 몸부림도 잠시 뿐이었다. 

나는 지금, 물살의 흐름을 감지하고 있었다. 내 몸을 스쳐지나가면서 닿는 미세한 떨림까지. 열어놓은 수 만개의 촉각은 나를 향해 유유히 다가오는 포식자 특유의 힘의 전율이 느껴지고 있었다. 왔다. 곧이어 아비세니아 강에 받쳐질 제물의 둔중한 움직임이 밀려와 나를 압박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수면과 지면이 닿는 곳에 샤킬의 그림자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직히 나타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방심한 표정으로 샤킬을 맞이하고 있었다. 샤킬은, 내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맹그로브숲의 발돋움으로 인간의 앞발을 흠모하던, 작은 지배자를. 문득 그런 생각으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그림자의 색깔이 더욱 짙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며, 거리는 턱까지 좁혀져 있었다. 숨을 멈췄다. 지금이다. 나는 샤킬의 이마에 박힌 쇠꼬챙이를, 앞발로 힘껏 쥐었다. 그리고 다른 앞발에 쥐어져 있는 나무를 높이 쳐들어 샤킬의 눈을 겨냥하였다. 순간적으로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슈샨과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다. 당황한 샤킬의 눈동자는 분명 핏발이 서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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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성회님의 댓글

김성회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잠시 머물면서 이 아침에 고요를 깨우는
서전에 인사 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소서.~~

한미혜님의 댓글

한미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꿈 꾸는 것은 인긴만이 아닌, 시인만이 아닌
조그마한 생물도 꿈꾸눈 특권을 누릴 수
있음을 보고 갑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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