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無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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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無題)
이 월란
먼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또 다시 가야 할 멀고도 험한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마디 쯤에선 참지 못하고 먼저 달려갔다 온 길도 있었는데
생의 관절이 꺾이던, 우두둑 소리낸 그 지점에서
달려간 길 끄트머리, 미완의 조각상으로 서 있는,
때론 엎드려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나의 알몸을 만져보고 온다
내 걸친 누더기라도 벗어 덮어주고 오는 길
꽃의 언어로 휘감아도, 수목의 푸르름으로 감추어도
하늘의 맑음으로 덧칠해도, 먼산의 드높은 관대함 속에 파묻혀도
내 하루의 자궁으로 돌아와
손끝에 섬뜩하게 만져지는 나의 몸은 늘 벗고 있다
다라니같은 생의 주문이 새겨진
탯줄에 걸려 출렁이는 귀천 없는 몸의 하소연
작고 여린 혼들의 은폐되지 못하는 비틀거림이 있다 해서
생의 마디가 살짝 굽어지는 이 저녁
또다시 노을이 부른다고 여행가방을 주섬주섬 챙길 것인가
노을 아래 물든 고결한 나의 넋이 애벌레가 되어
꿈틀꿈틀 뼈가 비치도록 허물 벗어던지고 있다고
가문 여름 내내 버티어오던 하늘도
우듬지에 찔린 듯 성긴 빗방울을 불현듯 뿌려대면
보도 위에 즐비하게 나뒹굴던
터지지도 곪지도 못하는 정지된 화농들
움찔, 돌아 눕는 이 저녁
2007.9.1
이 월란
먼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또 다시 가야 할 멀고도 험한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마디 쯤에선 참지 못하고 먼저 달려갔다 온 길도 있었는데
생의 관절이 꺾이던, 우두둑 소리낸 그 지점에서
달려간 길 끄트머리, 미완의 조각상으로 서 있는,
때론 엎드려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나의 알몸을 만져보고 온다
내 걸친 누더기라도 벗어 덮어주고 오는 길
꽃의 언어로 휘감아도, 수목의 푸르름으로 감추어도
하늘의 맑음으로 덧칠해도, 먼산의 드높은 관대함 속에 파묻혀도
내 하루의 자궁으로 돌아와
손끝에 섬뜩하게 만져지는 나의 몸은 늘 벗고 있다
다라니같은 생의 주문이 새겨진
탯줄에 걸려 출렁이는 귀천 없는 몸의 하소연
작고 여린 혼들의 은폐되지 못하는 비틀거림이 있다 해서
생의 마디가 살짝 굽어지는 이 저녁
또다시 노을이 부른다고 여행가방을 주섬주섬 챙길 것인가
노을 아래 물든 고결한 나의 넋이 애벌레가 되어
꿈틀꿈틀 뼈가 비치도록 허물 벗어던지고 있다고
가문 여름 내내 버티어오던 하늘도
우듬지에 찔린 듯 성긴 빗방울을 불현듯 뿌려대면
보도 위에 즐비하게 나뒹굴던
터지지도 곪지도 못하는 정지된 화농들
움찔, 돌아 눕는 이 저녁
200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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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순섭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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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無題들이 왔다가는 이 밤 생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보고
다른 한 면도 거울에 비추어 또 다시 들여다 봅니다.
`무제` 잘 감상하고 물러납니다. 감사합니다.
朴明春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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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섬뜩하게 만져지는 나의 몸은 늘 벗고 있다
다라니같은 생의 주문이 새겨진
탯줄에 걸려 출렁이는 귀천 없는 몸의 하소연...
시어에 머물며
긴 여로을 걸어가는 듯 합니다.
아름다운 시향 고맙습니다^^
김성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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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시인님의 관찰이 부럽습니다.
돌아누운 밤을 간지럽히면,
다시 돌아누울지도 모를 일...
이선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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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눕는 이 저녁..
노을 아래 물든 고결한 나의 넋이 애벌래 되어...
아름답습니다. 멋진 시향에 머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