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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 - 윤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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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목원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8건 조회 1,643회 작성일 2006-08-28 21:19

본문

 
 
 사의 찬미-윤심덕 http://donggran2.com.ne.kr/umack01/songofdeath.wma
 
 
절세가인 윤심덕-사의 찬미 |
절세가인 신여성 윤심덕(尹心悳)
 
 
윤심덕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비유학생이었고, 최초의 여류성악가였으며, 최초의 대중가수,
당대 최다 음반판매량 보유가수, 방송국 사회자, 그 시대의 최신 패션모델이었다라고 일컫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그녀는 대중의 관심속에 있었고, 가장 성공적인 신여성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 윤심덕이 1926년에 서른 살의 나이로 자살한다. 정확하게 그녀가 왜 죽었는지를 기술하고 있는 자료는 없다.
심지어 그녀가 정말로 자살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자살을 가장하고서 다른 곳으로 도피했는지조차도 어떤 의미에서는 불확실하다고 말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가 극작가 수산 김우진과 현해탄에 몸을 던진 것으로 알려진 얼마 후에 그들이 이태리에서 목격되었다는 소문이 신문과 잡지 등에 소개되고 있으니 말이다.
윤심덕이 왜 자살을 했던지 간에, 그리고 그녀가 정말 자살을 했던지 안했던지 간에,
윤심덕의 좌절은 그 시대를 살면서 자기 정체성 확립에 실패했던 우리나라 신여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윤심덕은 1897년 1월 26일 평양에서 기독교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윤심덕 위로는 언니 윤심성이 있었고, 아래로는 여동생 윤성덕, 남동생 윤기성이 있었다.
윤성덕은 나중에 소프라노로서 이화학당과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1932년부터 1937년까지 이화여전 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미국에 귀화하여 1970년에
작고 하였다고 한다.
윤기성은 연전 문과를 나와 도쿄 음악학교와 미국 오하이오대 성악과에서 바리톤으로 공부한 후 해방 직후 미군정 체신부에서 근무하다가, 1950년 6.25 발발 직후 중앙청에서 차를 나오는 길에 인민군의 사격을 받고 즉사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가족 성원들이 줄줄이 이 땅에서 고종명하지는 못했으니, 사연많은 집안이라고 아니 할 수 없겠다. 언뜻 보기에 평탄한 삶을 살았던 것 같은 윤성덕조차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1930년대 후반의 어느 친일단체에 이광수, 최남선, 방응모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뭏든, 윤심덕은 1907년에 진남포 사립여학교에 들어가서 서양식 학교교육을 시작 한 후,
평양 사립 숭의 여학교, 평양 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고, 나중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해서 거기서 사범과를 우등으로 1918년에 졸업한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녀는 공부에만 능했던 것이 아니라, 찬송가와 창가 독창자로 주변을 압도하였고, 한편으로는 요리에도 능하고, 편물과 자수 등에도 능한 다재다능함을 과시하였다고 한다.
또한 윤심덕은 키가 크고 목이 긴 매력적인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잡지에 의하면 그녀는 "스타일은 그야말로 동양여자로서는 구할수없는 맵시좋은 스타일의 소유자이다"라고 기술되고 있다.
미모와 다재다능함에 덧붙여 윤심덕은 성격마저도 쾌활하였던 모양인데, 아마 그녀의 지나치게 적극적이며 강한 성격이 자신의 인생을 통해 약도 되고 독도 되지 않았나 싶다.
잡지 신여성 1923년 10월호는 윤심덕이 "누구를 만나도 존경어를 쓰는 일이 별로 드물다"고 전하고 있다. 또, 조선일보 1926년 12월 26일자에는 그녀의 성격을 짐작케하는 글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언제인가 그야말로 육척이나 되어 보이는 몸에 옥색치마를 발 뒤축까지 끌고 평안도 수건을 맵시있게 눌러쓰고 평양 천지를 횡행하다가 종로 네거리에서 어떤 청년 남자를 만나서 평안도 사투리로 '야 오랍아 너 잘 있댔니'하고 손을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보았다"
이런 그녀의 성격은 "흐믈거리고 껑충"댄다고 평가되기도 했고, "다만 넘쳐흐르는 젊음을 어찌하지 못하여 그것을 써버리지 않으면 배겨나지 못하고, 과잉한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으면 참지 못"한다고 기록되기도 했다. 그래서 한마디로 그녀는 "왈패"라는 별명을 그 시대에 가지고 있었다.
1918년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서, 그녀는 강원도 원주로 발령이 났다가 석달 뒤에는 또 다시 횡성 벽지로 이동 발령을 받았는데, 평양여자고보 동창회 모임때 특별 내빈으로 참석한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에게 항의를 해서 춘천으로 다시 발령을 받았다는 말이 전하고 있으니, 그녀의 당돌했던 성격을 짐작할 만 하다.
그녀는 한 때 연극배우로도 활약을 했었는데, 연극계로 투신하는 방식도 당돌했다.
당시의 신문 기사에 의하면, 어느날 극단 토월회 대표가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에는 "나는 평소에 연극에 관심이 많았고, 연극을 하고 싶으니 나를 만나서 판단해 보고 써주시오"라고 부탁하는 말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극단 관계자가 약속장소로 가 보니 그 편지의 주인공은 뜻 밖에 당대의 음악스타 윤심덕이었다고 한다. 윤심덕은 극단에 들어가면서 세 가지 조건을 걸었었는데, 그 중에는 무슨 일이든지 자기 마음에 맞춰줄 것을 요구하는, 지금 우리 생각에는 기가 막히게 오만한 조건조차 포함되어 있었다.
그 시대에 여자가 그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으니 "사회 생활"이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을 것임은 누구라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오사카 닛토 레코드 회사에서 윤심덕이 "사의 찬미"등 10여 곡의 노래를 취입하기로 되었을 때 피아노 반주는 동생 성덕이 맡기로 하였다.
성덕은 언니 노래가 취입되면 곧 미국 유학의 길에 오르기로 되어 있었다.
[이바노비치곡인 '다뉴브강의 물결'에 '사의 찬미' 가사를 붙여 레코드 취입]

                          - 사의 찬미 -
                독창: 윤심덕  반주: 윤성덕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녹수 청산은 변함이 없건만
                우리 인생은 나날이 변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지금 흐르는 노래는 은방울자매가 부릅니다) 
             
 
 
오사카 오카하루 여관에 집을 푼 윤심덕과 성덕 자매는 닛토 레코드 회사 다우치와 교섭 끝에 10여 곡의 취입을 끝냈다.
7월의 무더위 속에서 윤심덕 자매는 그 길로 요코하마에 가서 이별을 가졌다.
미국으로 떠나는 동생 성덕은 윤심덕이 1921년 귀국했을 때 이화여전을 나왔고, 뒷날 이전 끌리 클럽의 지휘자로 명성을 떨친 사람이었다.
동생을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윤심덕은 동경에 머물러 있는 김우진 곁으로 달려갔다.
 
 

 

죽음--.
그들의 만남에서 죽음 은 비롯되었고, 사랑의 밀어에서 죽음은 구체화되었다.
그들 두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의 영원함이란 곧 죽음 그 자체였으므로 죽음을 피한 사랑이 영원이란 기대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사랑은 죽음에 이르는 길. 아, 그 길인가.
그 길이란 곧 신파조의 연극 대사만은 아니었다.
아니, 죽음 이전에 그들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사랑의 밀월 여행이었다.

"사의 찬미"등 10여 곡의 레코드 취입료는 죽음행 열차와 배표를 사는 요금이 되었다.
"목포 오빠..... 도쿄서 시모노세키까지 해안선을 따라가며 해수욕도 하고 온천도 즐겨요.
 이 돈이 바닥날 때까지........" 윤심덕이 속삭이면,
"조선으로 가는 배표는 사야잖아?" 하고 김우진은 부산행 배표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배표! 그건 배표가 아니에요."
"배표가 아니라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떠나는 데 필요한 여행비예요."
"여행비......"
그들은 30세의 젊음을 즐기고, 뉘우치고, 방황하면서, 시모노세키에 닿았다. 1926년 9월 3일.
부산으로 떠나는 연락선 도쿠슈마루 선객 명부에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올랐다.
전남 목포시 북교동 김수산. 경성부 서대문정 2목정 173번지 윤수선.
배가 떠나는 시각은 11시.
"생각나?..... 서울 수은동 60번지 오전 사진관 뒷방에서 밥을 사먹던 일......."
김우진이 갑판 위에서 어둠 속의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진관 뒷방에서 그들은 윤심덕의 라디오 출연료와 노래 부른 사례비로 겨우 살았다.
8월 4일 새벽 4시. 죽음은 무릎 아래에까지 밀려와 있었다.
목포 갑부의 아들 김우진은 사진관 뒷방을 얻어 가지고 윤심덕이 벌어 온 돈으로 밥을 사먹던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저 세상에도 그렇게 초라한 사진관 뒷방이 있을지 몰라. 우리 그런 방을 세 얻어서 한 천 년쯤 살아 보자."
어느새 한몸이 된 두 남녀는 이 세상의 모든 기억을 밀어내고 있었다.
새롭게 열리는 두 사람만의 세계, 어둠 속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로 몸을 날렸다.
"풍덩!" 하고 현해탄 검은 바다가 두 사람을 안아 들였다.
그들이 이 세상에 남긴 돈은 총액 145원이었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나이 30세.
두 사람의 정사는 신극사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이미자의 더 큰 메아리로 1920년 후반을 휩쓸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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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도나우(다뉴브)강의 잔물결이란 왈츠곡에 가사를 붙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노래입니다.구성지게 부르기도 했지만, 윤심덕의 사랑 이야기가 더 애절했던 듯...
얼마나 사랑하면 죽음으로 천년의 사랑을 기약할 수 있을까 한편 부럽기도 하답니다.
^^*
하늘빛 하루종일 우울하던 서울엔 지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

김희숙님의 댓글

김희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현해탄을 건너던 뱃머리에 두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발견됨으로
두사람이 현해탄에 풍덩 한것으로 추측되지요.
하지만 시체가 발견된 것도 아니고...두사람의 비 윤리적인 애정행각의 도피로서
이용했다는 말도 있고요.
당시의 신여성들은 이상하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대부분 유부남이
많았다는 사실, 폐쇄적인 사회 환경속에서 신여성들의 개방된 사고가
그런 불합리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윤심덕의 재능은 너무 아깝지만
그렇게 사라진것에 대해선 유감입니다~
목원진 시인님 잘읽고 다시한번 윤심덕이란 여성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늘 강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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