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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파일을 옮겨 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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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혜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942회 작성일 2011-02-15 11:45

본문

<컴퓨터 파일을 옮겨 심으며>

                                              김혜련


순천고 교무실 내 책상 위
컴퓨터 속에는 지난 4년 동안
모진 산고 끝에 낳은 묵직한 파일들과
한순간 끙하며 숨풍 쏟아낸 가벼운 파일들이
나름의 질서 속에서
각자 방을 만들어 오순도순 살고 있다.

녀석들을 보면
한낱 차가운 파일이 아니라
심장 뛰는 사람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출생신고를 한 그들은 4년 동안 잘 자라서
이젠 인격과 정체성까지 지녔다.

문학자료방에 사는 파일들은
수업시간 열여덟 야자수 같은
녀석들의 눈을 붙잡기 위해
각혈을 몇 번이나 하면서도
결근 한 번 하지 않았고
학적공문방에 사는 파일들은
개인이 아닌 공인의 신분으로
도교육청 지역교육청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제주도까지
방학도 없이 발바닥 헐도록 뛰어다녔다.

이제 이 학교를 떠나야 하니
힘들여 낳은 숱한 파일들 자식 같아
어느 것 아나 버릴 수 없어
대용량 유에스비에 옮겨 심으며
나는 그만 가슴이 사무치고 만다.

울컥 울음보가 터지는 순간이다
이 많은 식솔들 데리고
어느 낯선 학교에 가서
또다시 방을 만들고
잘 키워낼 자신이 있는가
누군가 집요하게 묻는다.

아무런 증거도 댈 수 없지만
감히 나는 내가 쓰러져
숨이 멎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사랑하기에 끝내
버리지 않을 거라
눈시울 적시며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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