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세탁소

- 순천만국가정원

                                                        김혜련

어렵게 어렵게 오년 만에 간신히

일반계고등학교 높은 문턱을 넘고 보니

잡무라는 돌부리 왜 그리 많던지

두어 발자국 걸으면 돌부리

어김없이 삐죽삐죽 뾰족뾰족

걸리고 차이고 무릎 성할 날 없었네

세탁 못한 일 년치 오염된 감정들이

악취를 데리고 목구멍까지 뚫고 올라와

숨조차 쉴 수 없었던 2019년 12월 31일

드디어 겨울방학 선언식

생기부 쓸 일 일 톤 트럭으로

스무 개도 더 되는데

일단 살고 보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감정세탁소로 죽을 둥 살 둥 달리네.

가만히 앉아서 죽으나

달리다 숨 막혀 죽으나

어차피 결과는 같으므로

숨통 쥐어박는 심정으로 달리네

일 년 회원권 보여주며 들어선 감정세탁소

눈물의 상봉으로 귓불이 붉어지는데

사백 킬로그램 분노

천 킬로그램 슬픔

백이십 킬로그램 미움

이백오십 킬로그램 우울

백팔십 킬로그램 절망

구십이 킬로그램 자학

삼백구십 킬로그램 사랑

육백 킬로그램 그리움

삼백 킬로그램 기쁨

감정의 무게를 달던 직원

이마의 땀을 연신 닦으며

너무 많아 곤란하니

삼분의 일만 세탁해 줄 테니

내일 또 오라 하네

오늘은 일단 분노 삼형제

책임지고 세탁해 줄 테니

저쪽 편백나무 숲에 가서

숨 좀 쉬라 하네.

아아, 잠시 후 나는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