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無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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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4건 조회 1,126회 작성일 2007-09-02 12:11본문
무제(無題)
이 월란
먼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또 다시 가야 할 멀고도 험한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마디 쯤에선 참지 못하고 먼저 달려갔다 온 길도 있었는데
생의 관절이 꺾이던, 우두둑 소리낸 그 지점에서
달려간 길 끄트머리, 미완의 조각상으로 서 있는,
때론 엎드려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나의 알몸을 만져보고 온다
내 걸친 누더기라도 벗어 덮어주고 오는 길
꽃의 언어로 휘감아도, 수목의 푸르름으로 감추어도
하늘의 맑음으로 덧칠해도, 먼산의 드높은 관대함 속에 파묻혀도
내 하루의 자궁으로 돌아와
손끝에 섬뜩하게 만져지는 나의 몸은 늘 벗고 있다
다라니같은 생의 주문이 새겨진
탯줄에 걸려 출렁이는 귀천 없는 몸의 하소연
작고 여린 혼들의 은폐되지 못하는 비틀거림이 있다 해서
생의 마디가 살짝 굽어지는 이 저녁
또다시 노을이 부른다고 여행가방을 주섬주섬 챙길 것인가
노을 아래 물든 고결한 나의 넋이 애벌레가 되어
꿈틀꿈틀 뼈가 비치도록 허물 벗어던지고 있다고
가문 여름 내내 버티어오던 하늘도
우듬지에 찔린 듯 성긴 빗방울을 불현듯 뿌려대면
보도 위에 즐비하게 나뒹굴던
터지지도 곪지도 못하는 정지된 화농들
움찔, 돌아 눕는 이 저녁
2007.9.1
이 월란
먼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또 다시 가야 할 멀고도 험한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마디 쯤에선 참지 못하고 먼저 달려갔다 온 길도 있었는데
생의 관절이 꺾이던, 우두둑 소리낸 그 지점에서
달려간 길 끄트머리, 미완의 조각상으로 서 있는,
때론 엎드려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나의 알몸을 만져보고 온다
내 걸친 누더기라도 벗어 덮어주고 오는 길
꽃의 언어로 휘감아도, 수목의 푸르름으로 감추어도
하늘의 맑음으로 덧칠해도, 먼산의 드높은 관대함 속에 파묻혀도
내 하루의 자궁으로 돌아와
손끝에 섬뜩하게 만져지는 나의 몸은 늘 벗고 있다
다라니같은 생의 주문이 새겨진
탯줄에 걸려 출렁이는 귀천 없는 몸의 하소연
작고 여린 혼들의 은폐되지 못하는 비틀거림이 있다 해서
생의 마디가 살짝 굽어지는 이 저녁
또다시 노을이 부른다고 여행가방을 주섬주섬 챙길 것인가
노을 아래 물든 고결한 나의 넋이 애벌레가 되어
꿈틀꿈틀 뼈가 비치도록 허물 벗어던지고 있다고
가문 여름 내내 버티어오던 하늘도
우듬지에 찔린 듯 성긴 빗방울을 불현듯 뿌려대면
보도 위에 즐비하게 나뒹굴던
터지지도 곪지도 못하는 정지된 화농들
움찔, 돌아 눕는 이 저녁
200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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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순섭님의 댓글
이순섭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生의 無題들이 왔다가는 이 밤 생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보고
다른 한 면도 거울에 비추어 또 다시 들여다 봅니다.
`무제` 잘 감상하고 물러납니다. 감사합니다.
朴明春님의 댓글
朴明春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손끝에 섬뜩하게 만져지는 나의 몸은 늘 벗고 있다
다라니같은 생의 주문이 새겨진
탯줄에 걸려 출렁이는 귀천 없는 몸의 하소연...
시어에 머물며
긴 여로을 걸어가는 듯 합니다.
아름다운 시향 고맙습니다^^
김성재님의 댓글
김성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시인님의 관찰이 부럽습니다.
돌아누운 밤을 간지럽히면,
다시 돌아누울지도 모를 일...
이선돈님의 댓글
이선돈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돌아 눕는 이 저녁..
노을 아래 물든 고결한 나의 넋이 애벌래 되어...
아름답습니다. 멋진 시향에 머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