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절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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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절구통
김혜련
살다보면 거두절미하고 죽고 싶을 때가 있다
목젖까지 넘어오는 고통과 절망의 질감 속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자살이라는 결론에 목을 맨 적이 있다.
감꼭지처럼 건조하게 부어오른 눈두덩이 속에 눈물샘이 불어나고
유서 한 장 써 낼 기운조차 없을 때
할머니의 절구통은 내 죽음을 원천봉쇄한다
할아버지는 육이오 때 수류탄 터져 죽었고
외삼촌은 여순 사건 때 총 맞아 죽었고
큰아버지는 월남전에서 죽어서 돌아왔다
막내고모는 어릴 때 병원도 못 가보고 꼽추가 되었다
할머니는 현미쌀눈보다 많은 세월 속에서
못 생긴 바위 하나 입양하여
날마다 두드리고 갈고 찍고 때리고 달래며
피맺힌 돌절구 하나 낳았다
새벽마다 꽁보리 찧어 지은 따순 밥 덕에
시동생 자식새끼 손주손녀 다 제 밥벌이하게 만든
일등공신 할머니의 도구통
담석 닮은 내 절망을 절구공이로 곱게 빻아 가슴을 쓸어 주신다
“아가~! 저 도구통 이제 니 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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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석범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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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옛 가정사 이네요 ..
도구통... 이제는 볼수 없고 보더라도 저편 구석에 밀려나 화분의 용도나
빗물고여 이끼의 군락지로 변한 귀중한 옛 자산..!
하늘과 땅의 기운을 이어주던 공이와 절구통이 시인님의 혼란한 마음을 쓸어 제자리에 갔다 놓으셨네요
-감사합니다
정경숙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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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힘을 빌어 땅의 곡식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인간의 단면을 지닌 절구통
공이가 부숴대는 모진 인생살이의 굴곡이
한눈에 파고들어 옵니다
그시절 그만한 굴곡진 삶이 밑천이 되어
오늘 귀한 작품으로 남겼으니 얼마나 큰 위로인지요
부숴지고 뭉개지고 가루가 되어야 마침내 들어가는 본향의 원천인걸요
그 절구통 하나 이어 받아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작품 앞에 머물다 갑니다
김혜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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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 님, 정경숙 님, 반갑습니다. 님들의 댓글이 제가 쓴 시보다 더 깊이있는 시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