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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이 없어요 - 지렁이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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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혜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435회 작성일 2023-07-29 11:41

본문

나는 눈이 없어요

- 지렁이의 독백

 

                                    김혜련

 

나는 선천적으로 눈이 없어요

조상 대대로 눈 없이 태어나는 천형의 대물림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태어나서 한 번도 뵌 적이 없어요

 

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뭇사람들에게 짓밟혀 죽어갔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문밖을 나가선 돌아오지 않았어요

 

며칠째 비가 내리네요

밤이 깊어가는 소리가

매미 울음소리처럼 거칠게 들려요

문밖으로 나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려요

집안에 박혀 있으면 숨이 끊어질 것 같아

아무도 몰래 문밖으로 코를 내미는데

나보다 두 살 많은 지혜로운 누님이

문밖으로 나가면 죽는다고

완강하게 가로막네요

 

콧속으로 들어오는 문밖의 공기

성급하게 나간 동료들의 주검 냄새가

물비린내를 몰고 훅 들어오네요

비 오는 날 밤이면

문밖으로 나가고 싶어 꼭지가 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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