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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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해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5건 조회 1,750회 작성일 2005-10-17 12:07본문
어머니의 작별인사
방안에는 여기저기에 병상이 놓여 있고 아픈 몸들이 신음소리와 함께 지쳐 쓰러져 있다. 소독 냄새가 방안에 잔뜩 배여 나고 가끔 하얀 가운을 걸친 천사 같은 간호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병상 위에 상반신을 들어내고 산소호흡기가 입에 물린 채 들어낸 하얀 배만 오르락내리락 한다. 동생인 듯 보이는 미혼 남자가 혼자서 병상 아래 신문지 한 장을 깔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환자의 간호에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은 듯, 포기한 듯, 넋 나간 듯 보인다.
다른 병상에는 가족들이 환자의 옆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간호를 하고 있다. 피로에 지친 모습들이었지만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빠른 환자의 쾌유를 비는 기도가 보인다. 환자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며느리인지 아니면 딸같이 보이는 환자의 가족을 쳐다보니 가슴이 아린다.
옆 병상에서는 암 선고를 받고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간호원에게 통증주사를 애원하고 있었지만 간호원은 본체만체 한다. 고통의 토악질이 응급실의 사람들 마음을 후벼 판다. 환자는 여자였고 남편은 포기한 듯 아니면 사업상 바쁜지 병원에 나타난 지 오래 전이라고 옆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내 귀를 아프게 쑤셔댄다. 가끔 친정어머니만 다녀간단다. 자녀들도 병원에는 나타나지 않는 내 팽개쳐진 그런 환자라 한다. 세상에 그럴 수가, 어찌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의 냉정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참으로 불쌍한 마음이 내 가슴을 울린다. 살며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까 본 30대 중후반의 어머니가 병원의 아들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누워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아들의 두 손을 잡고 닭 똥 같은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리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주름진 뺨에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린다.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서 어머니를 울려댄다. 아무도 그 모습을 보고 진정시키려고 하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다. 아들은 간경화로 오랫동안 식물인간인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상에 누워 있었던 것이었고, 며느리는 아들이 들어 눕고 가망성이 없음을 알고 보따리 싸 들고 집을 나가 버렸단다. 오늘 인공호흡기를 걷어 내고 아들과 작별을 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가슴에 아들을 묻기 위하여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울음 속에는 먼저 떠난 남편이 야속하고, 집 떠난 며느리가 원망스럽고, 살아온 세상이 허무한 듯 맺힌 슬픔을 싣고 있다. 아들의 볼에 뺨을 비비며 뜨거운 오열을 쏟으면서 작별의 인사를 통곡으로 대신한다.
“날더러 어이 살라고…, 날더러 우이 살라고…, 그토록 술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날더러 우이 살라고…”아들은 어머니의 찢어질 듯 서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얀 침상 위에 반듯이 누운 채로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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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고은영님의 댓글
고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해영 시인 님
안그래도 어젯밤 새벽까지
군에간 아들이 그립고 너무나 보고파서
찔끔 거리며 글을 썼는데...
세상 모든 사람이 사람에게 등을 돌려 떠난다 해도
부모님 만큼은 죽는 순간을 넘어서까지
자식을 가슴에 품지요...
이 글 읽고 또 눈가가 붉어집니다.
김영태님의 댓글
김영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슬픈 일을 보고 오셨군요.
가족중에 누군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큰 슬픔이겠지요
마음이 가득 담긴 글 뵙고 갑니다
김석범님의 댓글
김석범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눈물어린 광경을 보고 갑니다... 술/담배도 끊어야 할텐데....!!
박기준님의 댓글
박기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슴이 아픕니다.
;``으앙``";
선생님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어요.
숙독하며 갑니다.
김태일님의 댓글
김태일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해영 시인님, 감동적이군요.
부모를 보내는 마음보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더욱 아프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