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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남사를 다녀와서 >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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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은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7건 조회 2,155회 작성일 2006-05-13 07:36

본문

이른 아침 딸아이의 소풍 준비로 바쁜 손 놀림보다 길 떠날 내 마음이 더 바쁜 아침이었다. 처음 가는 사찰에 무슨 옷을 입고 갈까? 분홍 모시 원피스를 입고 갈까? 아니야, 혹여 모르는 길 찾아들려면 편한 바지가 좋을거야를 고민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길을 걸어 오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국 편한 차림을 하기로 했다. 두려움, 길 떠나는 두려움. 가보지 않은 길의 이정표를 꼭꼭 써내려간 종이 한 장과 먼 길 떠나기 위해 자동차에 식사 듬뿍 챙기고, 행여 모를 길이기에 나를 위한 김밥도 싸고, 커피와 오렌지도 챙겨들고 혼자서 정말 겁없이 길을 나섰다. 철쭉이 지기 전에 어서 빨리 날짜를 재촉한 길, 햇살 안겨드는 차창가로 어제보다 얌전해진 바람이 살갑게 두 뺨을 간지르고 만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안성 평택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직진 다시 직진, 안성에 들어서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길에선 창문을 내리고 다른 운전자들에게 길을 물었다. 어느 분이 자신의 차를 따라오라고 한다. 한참을 쫒아가다 생각해보니, 한 미모 하는 나로서야(?) 혹시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아닐까 순간 갈등이 생겼다. 계속 따라가야만 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분에게 물어볼까를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책에사 처음부터 믿지 않아서 속지 않는 것보다는 믿었다 속는게 인생을 사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고 한 그 구절만을 떠올리기로 했다. 농사일을 하는 듯이 검게 그을리고 수줍은 듯한 말투를 떠올리며 믿기로 하고 따라갔다. 돌아와 생각해보면 순간이었지만 그 분에게 의심의 마음을 가졌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또한 나의 믿음에 실망을 안겨주지 않으신 그 분에게 무사히 귀환한 이 시간을 빌어 감사한 마음도 잠시 전해본다.

길을 잠시 안내해준 분과 헤어져 313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사실 깜짝 놀랐다. 마둔 저수지. 생각지도 않았던 호젓한 장면에 얼마나 놀라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호젓한 길을 자박거리며 걷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함께 동행한 차는 어쩌고 걸어가겠는가 말이다. 마둔 저수지와 함께 서운산 입구에 들면서 나를 반긴 건 다름아닌 직박구리와 어치들의 몸짓, 박새 울음 소리 그리고 이름 모를 새소리, 정신 없는 환영식에 길손은 넋을 잃고 말았다. 길가 애기똥풀들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노란 얼굴로 방긋방긋, 마둔 저수지 물결 위에 걸터 앉아 노닐던 햇살 곁으로 내 마음은 어느 새 나려 앉아 행복을 소곤거리고 있었다. 석남사 이정표를 만날 때마다, 글쎄? 학창시절 짝사랑하며 가슴만 애태우던 선배를 20년 만에 만난들 그리 콩닥거렸을까 싶다.

마침내 도착한 석남사 입구에 다다르자 '해냈구나. 목적지를 찾았으니.......' 참으로 대견스런 내 자신에게 별 스티커 한 장 가뿐하게 발부해줬다. 특이했던 건 예의 사찰에서 볼 수 있던 일주문이 없었다는 것, 또 시나브로 죄지은 거 많은 삶에 무시무시한 천왕문의 통과의례가 없어도 되었다는 것이었다. 두꺼비 입에서 감로수라고 하기엔 너무도 우렁차게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산사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지만 오수(午睡)에 젖어든 산사는 쉬이 깨어날 줄 몰랐다. 철쭉은 기대치보다는 아쉽게도 져가고 있었지만 대신 대웅전 앞 개화 준비에 바쁜 산수국의 꽃봉오리들은 객(客)의 발자욱 소리에 놀라 깨어나느라 바빠보였다. 끝임없이 지저귀는 새울음소리에 맞춰 춤을 추던 것은 다름 아닌 나비님들이었다. 긴꼬리제비나비, 호랑나비, 또 이름 모를 손톱보다 더 작은 나비들이 갸날픈 몸짓으로 내 눈길을 끌고 있었다. 그 산 속에 그리 아늑하고 고운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초파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산사가 그리도 침묵을 갈망하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신라 문무왕때 담화화상에 의해 처음 지어졌다는 석남사 대웅전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경엔 두 말이 필요 없고, 한 계단 한 계단 섬돌을 내려와 윤기나는 금광루(金光樓)에 올라서 벽에 걸린 글들을 읽고 있노라니 구석에 나무판에 한 자 한 자 새긴 한자(漢字)들이 눈에 들었다. 아무 해에 전각이 무너져 다시 만들기를 동네 노인들의 친목회에서 돈을 모아 만들었노라하는 내용이었다. 아무개님이 일천 몇 백원, 또 아무개님이 이백 원 등등. 읽으면서 그 옛날 낯모르는 친목회 노인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느라 애쓰는 동안 연꽃무늬 빈 창살 사이로 바람이 손길을 내민다. 가서 한 시간 정도 머물러있었지만 드는 객도 나는 객도, 스님들의 불경소리도 목탁소리도 그림자도 보지 못하였다. 승방(僧房)을 함부로 열어볼 수도 두드려 볼 수도 없었다. 침묵을 익힌 너무나도 고즈넉한 산사였기에 말이다. 객 없는 산사에 바람이 들러 풍경(風磬)을 건드리고 달아난다. 풍상을 이겨낸 긴긴 세월을 말해주듯 녹슨 풍경만이 바람의 짓궂은 장난에 화답해주고 객은 그 소리를 가슴으로 마셔버렸다.

불혹하고도 서너 해를 더 지난 나이에도 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과 악세서리라고는 간단한 목걸이 하나가 내 몸에 걸친 전 재산인 나의 모습은 단조롭지만 자연 앞에 작아진 마음 속 생각들은 불혹의 고개에 선 삶의 분수령을 넘나들며 하루를 보냈다. 며칠 안에는 끝나지 않을 지리한 책들과의 씨름에서 잠시 백기(白旗)들고 다녀온 천년 사찰 석남사에서 챙겨온 하루는 긴긴 시간을 버텨낼 힘을 줄 것 같다. 불원천리(不遠千里) 나를 따라 내달려온 풍경소리가 쉬이 잊혀질 것 같지 않다. 갈때의 발걸음은 급했지만 돌아오는 길 만은 서두르지 않고 내려왔다. 백미러 속으로 한 그루 한 그루 물러서는 나이 어린 붉은 단풍나무들. 아쉬운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울 시간이여, 오늘도 안녕!'

- 영원히 자연의 벗이고 픈 시간에~~ -

2005. 5. 13.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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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백원기님의 댓글

백원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성 서운산 석남사를 다녀 오셨군요. 반대편엔 청룡사가 있지요. 근교에 있으면서, 얕으막한 산이면서 철쭉도 아름답고 천년 고찰과 호반의 아름다움이 있는곳 입니다. 수 년 전에 다녀온곳, 다시 다녀온듯 합니다. 감사 합니다.

한기수님의 댓글

한기수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전엔 사찰를 가끔은 같는데, 요즈음은 통 갈수가 없었는되 이은영 작가님의 글
즐감 하면서, 잘 단여 온 것 같습니다, 항상 행복 하세요,- 즐감 하고 갑니다 -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수룡 작가님, 분에 넘치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고운 밤 행복하세요.. ^^* / 백원기 시인님, 청룡사~, 가봤습니다. 그 곳에 가면 차우차우라고 순하디 순한 검정털을 가진 개도 있지요? 마둔저수지에서 낚시 한 번 해봤으면 싶었답니다. 감사합니다.^^* / 하홍준 시인님, 글이 부족하여서 그렇지 정말 고즈넉한 산사였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지요. 발길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한기수 시인님, 가슴에 담아 온 풍경소리 살그머니 내려놓고 갑니다. 흔적 남겨주심에 감사한 마음이니, 한 줌 가져가셔도 좋겠습니다. ^^*

김석범님의 댓글

no_profile 김석범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산사의 풍경...찌든 마음 털어 내면  더 없이 맑아 지는 가슴으로 또 산사를 찾아가나 봅니다 ...선한 풍경이 그리워 지는 주말 아침입니다....!!

금동건님의 댓글

금동건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석남사 ( 언양에 ) 있는절을 말하는가요
석남사 기행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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