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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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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오영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9건 조회 1,395회 작성일 2006-09-09 19:05

본문

정인 (情人)

                                도정/오영근

장날이면
지팡이와 걸 망태를 메고
덕개(德介)할아버지가 오셨다

칡 넝쿨로 엮은 망태 속엔
토끼, 강아지, 병아리 같은 작은 목숨들이
호미, 낫, 까꾸리 같은 살벌한 연장들과
함께 들어 있곤 했다.

어린 나는 늘
그 망태 속이 궁금하여
할아버지 곁을 따라 다녔다.

내 키보다도 더 큰 명아주 지팡이는
할아버지의 합죽 웃음처럼 가벼웠지만
그 가벼운 몸으로 또 한 사람의
사윈 삶을 부축하였다.

덕개(德介)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정인(情人)이셨다.
소싯적 혼자되신 할머니는
장날마다 손수 빚은 술독을 애지중지 했지만
아버지는 걸핏하면 술독을 깨 버렸고
나는 담벼락에서 숨을 죽였다.

할아버지가 다녀가신
수수깡 울타리에 어둠 짙은 밤이면
남폿불 냄새 나는 이불 속에서도
할머니의 타령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덕개(德介)바다에 어허 얼싸 찬바람 분다"
"얼싸 좋네! -- 하~좋네 군밤이여! ---"
"에 헤라 생 률 밤이로구나!"

2006,09
추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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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한미혜님의 댓글

한미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릴 적 말 안들으면 잡아가는 망태할아버지!
그 망태 속에 들어 있는 토끼!
덕개바다에 부는 찬 바람*
바람이 불어불어 그 분에게도 살랑거리기를 기원하며^^*

정영희님의 댓글

정영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망태속에서 살벌한 연장들이 여리고 작은
목숨들에게 해나 끼치지 않는지..
걱정하며 따라 다녔을 것 같네요. 

글 뵙고 갑니다 오영근 시인님.   

           

김희숙님의 댓글

김희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년의 기억들이 세상살이에
많은 추억이 되기도 하고 가슴아린 상처가 되기도 하지요.
이 글이 제겐 어쩐지 가슴 싸아~하게 하네요
늘 건강한 일상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웃음 가득하시구요...^^*

김태일님의 댓글

김태일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년의 추억이 우리 삶에 가장 의미가 있는 것 같더군요.
힘들었을 때, 어려웠을 때의 경험이 우리의 삶을 더욱 살찌우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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