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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지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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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순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399회 작성일 2021-06-14 14:38

본문

파리와 지렁이

 



이 순 섭



낮술에 낮 달이 떠오른다

 

점심과 맞바꾼 담배 두 갑

그것은 거짓이다

햇빛 받아 땅에 오른 지렁이

파리 떼가 달라붙는다

물 쏟는 호수 관 높낮이 따라 손 가운데 놓고 씻는다

 

물 주려 한가득 뜻 따라

내 글 위에 파리가 앉았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렁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메마른 세상

나무에 물 주니 나무가 웃는다

지렁이에게 보다 나무에게 필요한 물

지렁이에게 물 뿌려 주는 사람은 알고는 없을 것이다

메마른 붉은 벽돌 마당 위에서

묻어가는 나뭇잎 작년 낙엽이다

참새 펄쩍펄쩍 뛰노는 마당

배롱나무에 물 뿌리니 무지개 섰다

선명한 색깔 잃은 무지개

 

파리가 지렁이에게 모여든다

마음에 비 고인 물 긴 빗자루로 쓸어 내린다

오래된 나무 뿌리로 인해 평면 잃은 마음

마음은 항상 평평하지 못하다

떨어진 나뭇잎에도 말라 비틀 어진 지렁이

비는 내려도 싱싱하지 못하다

그래 비는 안 내려도 좋아

지렁이는 죽었고 메마른 나뭇잎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싣지만 참새

먹이를 쪼아 먹고 있다 있을 거야

그래 비는 안 내려도 좋아

나무가 있고, 지렁이가 기어 다니고, 파리는 날아다니고

참새는 날아다니다 깡충깡충 뛰어다녀도

어쩌든 하늘은 있구나

 

어느 듯 수녀원의 어두운 방 불이 커지고 여인은 사라졌다

오랜만에 낙엽이 잠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긴 빗자루로 쓸어낸다

계단 밑은 길이 없는 길

말라붙은 지렁이 주위에 맴도는 파리 떼

낙엽은 쓸어도 떨어질 줄 모르는 지렁이 시체

걸어 다니는 사람은 날아가는 사람들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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