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나기 백서

                             조 현 동

제대로 된 폭염의 맛을 보기 전까지

우리는 작년 여름에 겪었던 살인적인 무더위의 기억들을

새까맣게 다 잊어버리고만 있었으리라

초복이 오기 전까지는 모든 닭들과 개들도

이 뜨거운 여름을 나기 위해서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가를

잠시 잠깐 망각하고 있었으리라

아!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을

다 태워서 죽여 버리기라도 할 듯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는 저 태양!

이토록 숨 막히게 작열하는 햇발 하나하나가

지난여름에 그토록 견디기 힘겨웠던

살 뜨거움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생생하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제 비로소 제대로 된 폭염의 맛을 또다시 보고야 말았으니

우리는 이미 익숙했던 지난 여름나기의 기억대로

이 여름을 견디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닭들이여! 개들이여!

그 모든 생명 가진 존재들이여! 긴장하라!

드디어 인간들이

이 뜨거운 여름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일어섰다

도대체 이 인간들이 무슨 짓을 하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