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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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919회 작성일 2020-07-08 13:29본문
낮술
이러면
죽나,
그럴까
싶어
자발없이 술에 취한 날
노오란 하늘, 희번덕 핏발 선 눈에
수직으로 꽂히는 햇살
아래 차양 그늘에서 기다리던
힘들었던 사랑
이제는 어데로 갔나
세상살이 그런 거지
아무렴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너 없으면 나 어떡하고
나 없으면 너 어떡하나
유리병에 양파 뿌리 내리듯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익어가던 그늘지고 깨지기 쉬운
가장 불행했던 사랑 용감한 얼굴이
미안하고
언제부터였나, 먼 곳에서
불던 아련한 실바람
능금 꽃 흔들, 꽃 그림자 지던 아래
하얗게 빛나던 네 목덜미
귀밑머리 끝에 아롱아롱 맺히던 알 땀이
떠오르면
새하얀 광목에
물감 번지듯 색 퍼지듯
적시는 부끄러움 따라
어느새 모르는 사이
절로 씰룩이게 만드는
그리운 얼굴
까닭을 알면서도
까닭 모르는 척 이렇게 아픈 날
파리한 햇살 아래
하염없이 서 있던, 초나라 여인 같은
여리디여린
어린 딸내미
떠나기 좋은 날
비겁하게 비겁하게
악다구니 놀리며
그악하게 퍼붓던
작은 가슴 멍들라고
멍들어 죽어라고
죽도록 모진 소리 내지르는
살천스럽기만 한 구들더께를
그래도 아비라고,
아비라고 오도카니 외로 기다리던
이제는 멀리 나가 사는
어린 날 딸내미가
보고 싶다
핏발 선 눈 감으면
미련토록 슬픈
그 큰 눈망울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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