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송이의 삶

                      조서진 

하얀 봉지에 쌓인 포도송이를 씻던 중

시들어 있는 서너 개의 포도알을 보며

잠시 상념에 잠겨본다

튼실한 포도송이엔

수백여 개의 삶들이 옹기종기 모여

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듯 

하나의 생명줄에 꽉 매달려 있다 

무리에서 떨어진 포도알의 모습이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아 있어

그 가련한 포도알을 더듬거려 보지만

이미 수챗구멍으로 들어가   

한낱 음식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줄기를 놓아 버린 사연이야 알 순 없지만

쭈글쭈글해진 후회의 흔적만큼은

고스란히 얼굴에 남아있다

오늘따라 그 달던 포도알이 쓴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