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과수원에서

조서진

가을잔치가 끝난 사과밭에 서 있다

사과나무는 모든 걸 다 내어주고

초췌한 모습 품고선

마른잎과 이별을 서두르고 있다

잠시 이 황량한 곳을 바라보니

아픈 몸 이끌며 농사일

놓을 수 없는 부모님의 모습과 겹쳐,

아린 마음 더 깊게 파고든다

지난 가을의 문턱에서

쓰라린 상처 온몸으로 다 맞고선

꿋꿋히 본연의 모습으로

풍성한 과실을 내어준 것처럼

우리 사남매 키우시는 동안

모진 태풍 그렇게 들이닥쳐왔지만

부모라는 그 무게감으로

한 알 한 알, 정성들여

빠알간 사과로 세상에 내놓았다

스산하게 저물어 가는 늦가을의

과수원에서 서성이며

나의 삶 또한 이렇게 살아가야 함을

가슴속에 채워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