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소고

조소영

모든 생명들
겨우내 나목처럼 고통의 긴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상처마다 봄볕에 그을려
푸른 싹이 돋았다 

간절한 그리움 삶의 가지마다 햇살 타고 내려와
매화 향기 그윽하니 청신한 그대 앞에 서 있다

참 오랜만에 주어진 결코 서두르지 않는
성글게 여문 마음이 목련등에 손을 모으니
말갛고 탐스런 달꽃을 피었다

지쳐 있던 사람들 왕벚꽃 폭죽처럼 위로가 되고
꽃잎들 미련 없이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니
사람들을 대신한 상처는 훌훌 털어 비에 젖지 않는
나비처럼 새처럼 날아서 이별은 영원으로 내린다
어스름에 떨어진 불빛처럼 나도 꽃비 속을 걷는다

보랏빛 향기 코 끝에서 추억할 때
파스텔톤 학창 시절
라일락 꽃 좋아하시던 선생님 소환되고
아담하게 구부러진 조팝꽃 길을 조율하며 음미한다

봄은 주단, 봄은 들뫼 밥상,
부지런한 사람들의 곳간,
초록 물결 위 이팝꽃 뽀얀 밥알들 소복이 기름지니
마치 별들 조리질하듯 하다
사람들은 엄니의 품 속 같은 아늑한 봄 안에서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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