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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호, 봄의 손짓 원고(시8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 no_profile 김재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36회 작성일 2024-01-23 16:16

본문




같이 가자 

 

 

길섶으로 재잘대는

도랑물처럼

서로 심심하지 않게

 

같이 가자

 

엄마 닭을 따라가는

병아리들처럼

서로 길 잃지 않게

 

같이 가자

 

너와 내가 마주보는

두 눈길처럼

서로 외롭지 않게

 

같이 걸어가자

 

자꾸 그림자 밟지 말고

등 떠 밀지 말고




낮달

 


당신처럼 되고 싶어

그 빛나는 모습

그 황홀한 눈부심이 부러워

 

밤마다 밤마다

생각하다가

밤을 꼴딱 새운 아침

당신은 내 눈앞에 있었네.

 

빛을 잃은 내 모습

싫어 싫어

창백한 내 얼굴

부끄러워 부끄러워

 

등 돌리는 나에게

건네준 그 말

너무 보고 싶었다는 그 말

너무 고맙다는 그 한 마디 말

 

당신의 환한 하늘 길을 지나

낮달은 이제 마중 나가요

밤길 홀로 걷는 나그네를

 

때가 되면 다시 만나요

안녕히

 

나도 너무 고마웠어요.




봄비

 

 

봄비가 온다더니

 

집 앞에 긴 사래밭,

뒤안에 거름더미위로

봄비는 내리는데

 

눈 녹은 시냇가에

얼음장은 풀리는데

 

올라올 날을 잊으셨나

길이 질어 늦으시나

 

할 일은 봇물 같은데




다시 보자고 해 놓고

 

 

노을이 지는 언덕에 앉아

내 손을 꼭 잡고는

 

나는 천당에 너는 지옥에 있어도

다시 보자고 했지, 우리는

이 진흙더미에서 양자처럼 얽혀진

 

그런데 매번 전화를 해도

지금은 없는 번호라니

 

전부 텅 빈 말이었나

안봐도 다 안다고 잊어버렸나

 

햇살처럼 퍼지던 너의 체온

공기처럼 흐르던 너의 숨결

 

내가 볼 때마다 곁에 있겠다더니

 

보고 싶은 마음을 가슴속에 담아

뚜껑을 닫아두고 있으면

내 가슴속에 너가 있을 것만 같아

나는 두 입술을 꼭 다문다.

 



낙엽

 

 

혹시 바람났니

철없는 가을이 불렀니

낯선 골목길,

위험한 찻길을 막 쏘다니니

저녁놀처럼 빨갛게 물들 때

붙잡았어야 했는데

 

가슴이 답답하니

마음이 많이 아프니

그래도 아무데나 막 딩굴지마,

너가 떠나간 빈 집

혼자 지키는 이 앙상한 밤이

나는 너무 외로워

그리고 추워

 



연을 날려봐

 

 

그래

단장을 끊고 등가죽을 벗겨라

뼈를 추리고

피를 말려라

 

세월이 밟고 지나간

바퀴자국으로 납작해진

방패연을 만들어라

 

그리고 날려봐라

언 하늘위로

찬바람 속에 연을 날려라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움켜쥐고

겨울 들판을 달려봐라

 

너가 올려다보는 하늘위에서

나는 내려다본다

텅 빈 들판너머 지평선위로

소리죽여 꿈틀대는 봄

 

움트는 새 봄을




방하착(放下著) 내려놓다

 


큰 녀석 대학 졸업하던 날

아버지를 내려놓았다

 

막내 딸 결혼식 때

어머니를 내려놓았다

 

첫 손녀 안아본 날

나를 내려놓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역에

어두운 철길을 따라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나만 몰랐네

 

 

꿈결인가 했더니

 

잠결에

환한 너의 얼굴

달이었네

 

지금은 밤이었네

 

나만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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