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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운 고백 > - 수필(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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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은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3건 조회 2,255회 작성일 2006-05-10 06:19

본문

학원에 중국어 강사 일을 하러 다닐 때였다. 압구정 현대백화점 건너편 출구가 학원으로 다다르는 통로이다. 그 계단 중간쯤에는 할머니 두 분이 앉아계셨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늘 두 분이 계셨다. 하이얀 피부에 깡마르신 작은 체격의 한 할머니는 언제나 깨끗한 옷차림에 여름엔 여름대로 통풍이 잘되는 모자를, 겨울엔 겨울대로 멋스런 털모자를 쓰고 앞에는 완두콩이며 달래등 채마밭 한 평을 내어놓고 팔고 계셨다.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남루한 옷차림에 조금은 커다란 몸집에다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바구니 하나에 남들이 던지는 쨍그랑 소리에 의지하며 계셨다. 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성실한 할머니의 고운 모습엔 미소를 지었지만, 한 쪽에서 구걸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는 뵐 때마다 가엾다는 생각보다는 좀 비웃는 듯한 느낌으로 대했다. 두 분의 삶은 정말 너무도 비교가 되어왔다. 추하게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보면, 어떻게 노후를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에 다다른다. 당연히 깨끗한 할머니의 모습쪽으로 내가 옳다고 여긴 결론을 내려놓으며 그 자리를 스쳐지났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으로 향하던 계단을 오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외소한 몸집의 할머니가 그 추라한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떠먹이고 계신 것이 아닌가? 그 날 난 몸집이 큰 할머니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황달을 넘어 흑달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퉁퉁 부은 그 얼굴을 말이다. 앞의 할머니처럼 야채라도 팔고 싶어도, 병든 체력이 감당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오해였던가? 논어 里仁(이인)편에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유인자 능호인 능오인)' 오직 어진 자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어진 사람이 아님에 무슨 오만으로 그 할머니의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잠시라도 그 할머님의 삶에 인상을 찡그렸던가? 두 분 모두 서로 나이 들어가며 내 한 몸도 힘에 겨워진 삶일지언정 남의 아픔을 돌보고 있는 작은 체구 할머님의 모습은 진정 인간으로 化(화)한 성자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 날 두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고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넉넉해서 그 아픈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떠 먹여주신 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다만 아픈 할머니보다 건강이 조금 더 넉넉했을 뿐이었다. 그 날 후로 난 학원에 가는 화, 목요일 두 날은 그 할머니들의 안부가 특히나 궁금해졌다. 어느 날 그 아픈 할머니가 안 보이는 날이면 정말 우울이 밀려왔다. 혹시나 할머니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다음 학원 강의 가는 길에 그 할머니를 다시 보게 되는 날이면 감사한 마음이 분수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다. 그 할머니에게 가족이 있는지 자식들이 있는데도 돌보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선 의문을 접기로 했다. 왜냐하면 또 말 못할 아픔들은 서로가 있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 날 이후 나에게는 두 가지 변화한 것이 있다. 생각에 대한 변화가 그 한 가지요, 생활에 대한 변화가 나머지 한 가지다. 생각의 변화란 어떠한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면 난 최악부터 최선까지 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많이 키우려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활의 변화란 내 주변에 좋은 일이 생기면 잔돈푼이지만 거리의 힘든 분들에게 드릴 돈을 먼저 챙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들 생일날, 아이들이 상을 받은 날, 강사료를 받은 날 등은 어김없이 주머니에서 작지만 지폐를 미리 챙겨들고 학원문을 나서는 습관을 들였던 것이다. 할머니가 계단 저 아래로 보이는 곳쯤에 서고보면 가슴은 서둘러 콩닥거렸다. 주머니에서 손에 돈을 쥐고는 할머니 앞에 다다르면 얼른 돈을 꺼내놓고 달아나듯 내빼버리는 내 뒷모습에 할머니는 언제나 "고맙습니다다"라는 말씀을 고개도 숙인체 힘겹게 내어 놓으셨다. 그 목소리에 '아니예요. 할머니, 제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아요.'라며 마음속에는 오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지곤 했다. 차라리 말로 뱉어버린 오해였다면 할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겠지만, 내 맘에 홀로 쑥대처럼 쑥쑥 키워버린 오해에서 할머니에게 보이지 않는 누를 끼친 그 마음을 어디 가서 용서를 구한단 말인가. 겨우 잔돈 푼 몇 푼으로 오해에 대한 사죄를 해볼까 치기어린 나의 행동에 마음의 채찍을 심히 가해본다.

그 후로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보이지 않는 시간까지 생각하며 말을 한다. 그래야 나 스스로에게 오해라는 굴레를 씌우는 어리석음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지금은 압구정 학원에 강의를 나가지 않는다. 해서 가끔씩 그 할머니들 닮은 모습의 할머니들을 뵙거나 압구정 이야기가 나오거나 아픈 할머니들을 뵐 때면 그 할머니에 대한 죄를 빌지 못한 시간들이 가시가 되어 나를 콕콕 찔러댄다. 그 앞의 작은 체구의 할머니에게는 나 가진 기운이 없어도 나보다 못한 이를 도울 줄 아시는 그 마음을 정말 본받고 싶다. 인간은 이기적인 망각의 동물이기에 나 또한 할머님들을 잊고 지내고 말겠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아름다운 오해가 아닌 부끄러운 오해가 남은 나의 생애를 반성케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염치없는 마음으로 편안히 앉은 이 자리에서 두 할머님의 만수무강을 빌어본다.


추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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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전 * 온님의 댓글

전 * 온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자신을 세워 가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래서'良心" 이라  하나  봅니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분량 만큼의  양심을  찾는다면 세상은 살만  할텐데요.ㅎㅎ
머물다  갑니다.  건필 하소서.

정종헌님의 댓글

정종헌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망각이 없음 어찌 살아가겠습니까?
그래도 아무리 잊으려 해도 가슴 속에 사랑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어휴~ 글이 넘 작아요 좀만 키워 주세요..
안경 넘어 있는 눈이 쪼매 아파요...죄송(제가 눈이 좀 거시기해서요)...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 * 온 시인님, 남겨주신 걸음에 어찌 고맙지 않겠는지요?
제 자신에게는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였습니다. 자기분량 만큼의 양심이라는 말씀,
꼭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정종현 작가님, 죄송해요. 글자 키우는 법을 몰라서 눈을 피곤하게 해드렸군요?
그런데요, 테그에서 글자 폰트 크기를 키우면 되나요?
에궁!, 아는 게 도무지 없는 저랍니다.
알려주시면 좀 키워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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