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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ogubnoly In Nor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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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해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2건 조회 2,203회 작성일 2006-06-0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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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ogubnoly In Norway



- 노르웨이 환상



1.

그때가 25여 년 전이지 싶다. 내가 부산에 있었던 대동조선주식회사에 근무할 때이다. 그 때 우리 회사에서는 노르웨이와 영국의 선주로부터 드릴링리그[기름을 탐사하는 시추선]에 온갖 물자를 공급하고 지원하는 앵카핸들링/타그/서플라이 베셀(Anchor Handling/Tug/Supply vessel)선박을 각각 1척과 2척씩 수주를 받았다. 이 선박은 세계에서 최첨단 고성능인 것으로서 아주 험난한 북해바다의 기상조건에서도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고, 주로 북해의 유전개발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선박의 요구되는 성능에 대해서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면, 파고 20~30미터의 바다 위에서 이 선박은 기름, 머드(Mud, 진흙), 시멘트 등을 호스(hose)를 통하여 시추선에 공급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높은 파도와 강풍 속에서 선박자체가 정해진 위치를 지켜주어야만 호스가 끊어지지 않고 정상적인 목적을 수행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위성으로부터 선박의 현 위치를 찾아내어서 고수해야 할 선박의 위치(경도와 위도)를 입력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의 파고, 강풍, 조류의 크기와 방향 등의 변화량을 감지하여 선박자체의 장비된 주 추진 기관과 보조 기관은 물론 모든 장비에게 각각의 역할과 임무 량을 자동으로 할당 지령하여 선박이 정해진 해도[sea chart;바다지도]의 경도와 위도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고도의 성능을 요구하는 선박이었다.
이러한 선박에 사용되는 장비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았고-지금도 특수 장비의 일부부만 생산됨- 북구의 장비업체들로부터 수입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비업체를 선정하는 데는 애로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선박건조 체결이 이루어지고 난 후 한정된 장비업체의 장비가격이 올라가 버렸고 선주의 입김으로 인해 금액은 떨어지지 않았다. 즉 흑자 수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계획된 예산을 훨씬 초과할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오슬로에 출장하여 시장조사를 통하여 분석된 결과였다.

그 땐 밤도 낮도 없었다. 낮에는 조사, 상담하고 밤에는 분석 및 전략수립에 전력투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단 본국으로 돌아와서 최종 전략을 수립한 후 나는 2명의 동료와 함께 스타팅 멤버로 장기체류를 목적으로 여장을 준비해서 오슬로로 떠나야만 했다.

노르웨이는 세계 최고의 선박건조기술을 보유한 나라이다. 그들의 조상이 바이킹이라는 해적출신이다. 바이킹의 후예들이다. 지금도 오슬로에 가면 바이킹박물관이 있고 그 박물관에는 그들 선조가 사용했던 선박이 전시되어 있다. 해적생활 시절의 그 선박을 보면 그들의 해양문화와 선박기술이 얼마나 앞서 있는지를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한때는 조선 세계1위였으나 인력집중 산업인 조선업이 그들의 비싼 임율로 인해 지탱할 수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해운 세계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해운업이 발달되어 있다.

우리는 계약 선박의 기본 설계를 오슬로에 있는 한 설계회사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작성하기로 했고, 장비구매를 예산을 초과하지 않도록 건조계약사양을 만족시키면서 이루어 내야만 하는 중요한 임무가 부여되어 있었다. 동시에 선진기술을 완전 습득하여 선박 건조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도록 리딩의 책임까지 부여되었다.

‘성취해 내지 못하면 죽음뿐이다’ 는 각오로 스칸디나비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

나는 해외여행을 갈 때면 언제나 캐주얼 차림이다. 비즈니스 때문이 아니고 마치 놀러 다니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저 편해서 좋아서 그런다.
알래스카에 급유를 위해 착륙했다가 북극점을 지나 장시간의 비행 끝에 코펜하겐에 도착한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여기서 오슬로 행 비행기로 바꾸어 타야 한다. 코펜하겐 공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창가의 소파에 앉아 흙 내음을 즐기면서 2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오슬로 행 스칸디나비안 에어라인[SAS]에 탑승을 했다. 이국적인 스튜어디스의 모습들이 마치 마네킹을 보는 듯하다.

오슬로의 공항은 마치 시골에 있는 조그마하면서 아담하다. 이착륙이 많지 않아 조용하다. 공항에서는 담배와 리커(술)의 유입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세관에서 검사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여왕이 가장 절대적 존재이다. 여왕께서 남자들이 술 마시고 추행하는 것과 담배 피우는 남자를 아주 싫어한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서 술과 담배는 아주 비싸다. 담배인 경우에는 한국의 약 5배가 비싼 걸로 기억된다. 남자는 담배 피우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반대로 여성의 흡연 인구는 남성보다 훨씬 많다. 도박이란 것은 아예 모르는 민족이다. 어디를 가도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나 애틀란타시티에 있는 그런 도박장 하나 구경할 수가 없다.

노르웨이의 전 인구가 그 당시 400만 정도이고 오슬로의 인구는 40만 정도의 소도시이다.

버스 운전, 열차 검표, 전차 운전 등과 같은 우리나라의 3D에 해당하는 일은 노르웨이 자국민들이 꺼리는 일이다. 그래서 파키스탄 등으로부터 이민을 허용하였고 이민 온 외국인들이 이들 일들을 노르웨이 국적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수행하고 있다.

언어는 노르웨이어를 사용하지만 글자는 영어의 알파벳을 쓴다. 노르웨이(Norway)를 노르웨이어로 노르게(Norge)라고 한다. 상점에 가면 점원이 ‘머시고우’라는 노르웨이어를 구사한다. 이 말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는 영어의 “Can I help you?”의 뜻이다. 우리말의 “무엇이고?”의 경상도사투리인 “뭐시고” 와 발음이 같다는 것이 재미있다. 또한 영어의 “thanks”는 “tak!”(탁!)이라고 한다. “ 매우 감사하다”의 “many thanks”는 “망에 탁!”이라고 구사한다. 우리말의 “탁! 패 버릴라.”의 “탁!”의 발음과 억양이 똑같다.

오슬로에 갈 때면 항상 머물던 아커스가튼(Akers gatten;도로명칭)에 있는 호텔 아스토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는 언제나처럼 욕실에서 샤워를 즐겼다.

초겨울의 날씨라서 사방은 눈으로 덮여 있고 온도는 영하 20도가 평균이다. 다행히 한국과는 달리 습도가 높다. 그래서 감기는 잘 걸리지 않는다.

노르웨이에는 수력발전이 풍부하다. 그래서 난방은 전기에 의존한다. 한국에서는 온돌이나 스팀을 이용하지만. 일반 가정집의 구조도 대부분 목조이지만 에어타이트(氣密, air tight)가 정말 잘 되어 있고 난방 시설이 철두철미하게 잘 되어 있다. 한 가지만 소개하면 욕실에 들어가기 전에 욕실 스위치를 넣고 잠시 후 들어가면 바닥이 온돌처럼 알맞게 따끈하고 훈훈하다. 이는 바닥의 타일 하부에 히팅코일 (electric heating coil)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따뜻한 감촉은 정말로 좋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욕실바닥에 전기는 아니지만 스팀히팅코일( steam heating coil)을 설치하여 지금도 겨울이면 즐기고 있다. 아침에 화장실에 들어가면 훈훈한 가운데서 일보는 것과 샤워를 즐길 수 있어서 참 좋다. 노르웨이에서 배워 온 지혜이다.

여름의 낮은 짧다. 겨울의 밤은 너무나 길다. 그래서 우리와 같이 동이 터서 일어나면 매일 지각이나 약속된 시간을 놓치기 일쑤이다. 이들 가정에는 커튼이 우리와 같은 휘황찬란한 것이 아니다. 영화관에서나 볼 수 있는 안에는 검붉은 색, 바깥에는 검정색으로 된 이중의 천으로 되어 있다. 그래야만 대낮 같은 겨울에 수면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 곳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호텔의 모닝콜을 이용하거나 알람시계를 준비하지 않으면 매번 실수하기 십상이다.

스칸디나비아 3국(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중 노르웨이는 한때 스웨덴의 지배를 받은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이다. 이들 나라 중 노르웨이가 가장 보수적이고 그 흔한 섹스숍 하나 없다. 섹스산업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보드카와 같은 술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거리에서 주정뱅이를 구경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젊은 연인들의 거리에서의 포옹, 키스 등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있고 아주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런 것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나도 한국에서 가끔 이런 장면을 목격하면 그들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거리에서 사랑하는 연인끼리의 포옹 장면 우리에게는 구경거리일 것이나 나에게만은 아니다. 자연스런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차타레부인의 사랑을 영화관에서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필름 내용이 전혀 삭제되지 않은 오리지널이었다. 그래서인지 관중들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자극을 더욱 강하게 주었는가 보다. 영화관을 나온 거리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대낮 같았다. 그 빛나는 눈밭 위 여기저기에서 연인들이 끌어안고 나뒹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랑의 연극이 백야의 눈밭 위에서 펼쳐지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어른들은 전혀 이상한 눈초리를 보지 않을 뿐 아니라 구경거리로 생각지 않는다.

오슬로에서 겨울철 운전을 한다는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감히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고 미끄럽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서 신고 다니는 구두를 착용하고 걷는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몇 발자국도 못가서 거리에 큰대자로 들어 누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미끄럽기 때문이다. 필자도 처음 오슬로에 갔을 때 그런 경험을 겪은 바가 있다. 그래서 꼭 남자나 여자나 부츠를 신고 다녀야 한다. 그것도 노르웨이에서 구입한 부츠이어야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구입한 것으로는 그런 미끄럼 방지에 대한 고려가 충분치 않다.

노르웨이는 숲이 울창하고 침엽수가 많다. 오슬로는 자연 속, 아니 숲 속의 도시이고 숲 속에 저택이 많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에서 낭만이 넘쳐흐른다. 우리나라와 같은 아파트나 휴양을 목적으로 한 콘도는 구경할 수가 없다. 마치 숲 속의 요정들이 사는 곳처럼 느껴진다.

노르웨이 국민들은 스포츠를 아주 즐긴다. 겨울엔 스키를, 여름엔 요트를 즐긴다. 그래서 어느 해변에 가든지 스키와 요트를 쉽게 발견할 수가 있고, 대화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지만 재미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해변 가에 개인 별장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여름엔 해변 가 별장에서 요트를 즐기면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내가 알고 있는 오슬로의 한 친구는 가족들과 요트를 즐기면서 미혼의 아들딸 두 명과 부인과 함께 완전 벌거숭이로 햇볕을 즐기는 모습의 사진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들은 부모자녀 간에도 성에 대해 건전한 사고를 키우기 위함과 성교육을 위해서 많은 가족들이 그렇게 한단다. 그런 장면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단다.

또한 그들이 어릴 때부터 선박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는 대화에서 알 수가 있다. 선박과 해양에 대한 전문 내용뿐 아니라 아주 박식한 지식을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다. 해운과 조선왕국이었음을 입증한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조선(shipbuilding)기술자라는 것을 알면 더욱 관심 있게 접근한다. 한국의 조선 현황을 알고 싶은 것이다.

교통에 있어서는 유러패스권(일개월 분으로 철도역에서 판매)을 하나 구입하면 버스, 전차, 열차, 선박 등을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별다른 지불 없이 한 달간 탈 수가 있다. 대부분 이 패스를 가지고 다닌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에야 카드 하나로 연계시켜지고 있는 단계이고 보면 우린 이런 면에서 그들보다 20여 년이란 긴 세월의 뒤떨어진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다. 우리 국민에게 게을리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산재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택시가 줄을 선 채로 손님을 기다린다. 주의해야 할 사항은 반드시 맨 앞쪽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야 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의 모범택시처럼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질서를 지키지 않는 미개인의 눈초리를 받게 된다. 택시운전사도 정말 친절하다. 손님이 조그만 가방 한 개라도 들고 있으면 받아서 실어주고 손님이 택시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승객의 도어를 열어 주고 안전하게 탔는지를 확인하고 문을 닫은 후 운전석으로 돌아가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신다. 그리고 내릴 땐 ‘Have a nice day!’의 인사말을 빼먹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있을 때는 마치 왕이나 VIP가 된 착각을 줄 정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편을 이용한다.

기차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2킬로미터의 거리 정도는 걷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일부러 몇 정류장 전에 내려서 걷는 이도 많다. 운동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걷는 즐거움을 아주 크게 생각하고 있다. 걷는 것은 곧 건강을 위함이고 생명의 연장이라고 행복의 추구라는 사고가 그들에게는 뿌리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추운 겨울에도 많이들 거리로 나온다. 어린아이의 얼굴이 발그스름하다. 추위 때문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그렇게 환경에 적응 시킨다. 그래서인지 감기가 별로 없다. 우리의 부모들도 배워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해 본다.

노르웨이는 국민소득이 아주 높다. 얼마인지는 기억할 수는 없으나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다. 그리고 국가에 내는 세금이 아주 높은 대신 사회복지가 아주 잘 되어 있다. 살다가 아프면 무료치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이 적용되고 있다. 단 외국인에게는 그들 국가와 국가간 약정이 없으면 그런 출장 중, 병이 생겼을 때 그런 혜택을 입을 수 없다. 한국인은 혜택을 받지를 못한다. 그러니 아프면 엄청나게 비싼 의료비를 지불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며, 약국이라는 것이 없다. 반드시 의사의 진료에 의한 약을 병원으로부터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비약 정도는 준비해 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또한 소득이 높은 국민인 경우에는 소득의 80%까지를 세금을 내고 있다. 단 이들 소득을 재투자하는 경우에는 투자금액분에 대해 그 세금이 면제된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소득을 재투자 할 길을 찾고 있기도 했다.

우리가 노르웨이 선주와 건조계약 체결한 선박의 주주(주인)도 무려 40여 명이나 되고, 그들은 의사, 상인, 샐러리맨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공동으로 본 선박에 투자하여 선박을 운용하는 회사에 대여해주고 또 다른 소득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또 다른 소득창출을 위한 재투자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이런 투자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


3.

노르웨이로부터 수주한 선박에 소요될 주요장비는 대부분 노르웨이 제를 채택하게끔 계약사양의 내용에 기술적으로 교묘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AAA라는 제조회사의 제품을 사용하여야 한다는 문구는 없으나 건조사양 상에 AAA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AAA제품이 가지는 성능과 특징이 명기되어 있었다. 우린 이러한 사실을 사전에 알고 제조회사로부터 선박건조 계약 전에 가격을 타진한다. 선박건조계약서에 일단 서명이 되고 나면 쌍방간의 의무사항이 되어 버리므로 우리는 그들 내용을 만족 시켜야만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계약이 체결이 되고 난 후 장비 발주를 위해서 상세한 기술적 및 상업적 상담에 들어간다. 이러한 상담의 과정에서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추가금액요인(Extra cost factor)이 발생한다. 추가금액 요인의 사항이라기보다는 제조회사가 자사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우리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횡포를 부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떤 이유든지 만들어 내야 조선소(발주자)로부터 거금을 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제조회사는 기술적인 이유가 없으면 물가인상 등이나 자사의 이해되지 않는 억지의 이유를 대고 금액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려 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러한 작업에 밤낮이 없었고 커피 한 잔 조용히 마실 시간과 식사시간이 없을 정도로 유럽의 장비제조회사들과 시간계획이 짜여져 있었고, 미처 진행 중인 상담이 마쳐지기도 전에 다음 상담자들이 줄을 지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나의 요청에 의하여 유럽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슬로까지 상담을 위하여 온 것이다. 가능한 많은 제조회사를 만나서 상담을 하여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여야만 나의 속 포켓 안에 포커의 에이스 카드를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하나의 포커 게임인 것이다.

게임의 상대자는 선주사이다. 모르는 것만큼, 숨겨 둔 에이스카드가 적으면 적을수록 게임에 이길 승산은 낮아질 뿐 아니라 수업료를 더 많이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사제품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진 대부분의 노르웨이 제조회사들의 공통점은 말이나 행동은 그렇게 점잖고 정중하였으나 그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내용에 있어서는 냉담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행태는 선진국 제조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들의 제품을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주문자인 우리에게 보다는 선주에게 뒷구멍으로 달라붙어 선주로 하여금 그들 제품을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뒷거래나 영업을 늦추지 않는다. 한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것이다. 우린 그런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숙제로 주어진 문제는 엄청난 탐구와 노력과 희생을 극복하지 못하면 풀 수 없는 그런 문제인 것이다. 대학입시문제는 이런 문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일차로 선주의 숨어 있는 의향을 타진하기 위하여 단순한 품목 두 가지를 가지고 협상을 해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제안을 받아 주는 대신 또 다른 대가를 요구했다. 결국 협상은 우리의 목표를 이룰 수 없었다. 2개월의 시간이 흘러서야 유럽의(노르웨이,서독,스웨덴,핀란드,영국,덴마크)를 모두 상담과 방문 등을 통하여 스크린 할 수 있었고 모든 기술적 장단과 상업적 장단점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나는 이러한 상담의 내용을 모두 회의록으로 상세히 기록을 남기고, 나중에 다른 얘기를 하지 못하도록 상담자가 그들 회사를 대표해서 서명을 철저히 받아 두었다.

이젠 선주를 설득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여야 했다. 기술적 내용을 핑계로 선주가 지정하는 제조회사의 제품을 채택하는 경우, 1. 건조선박의 성능에 미치는 단점(weak point), 2. 건조선박의 인도 일자를 지연시킬 수 있는 요인, 3. 건조선박의 설치공간에 대한 문제점, 4. 선박인도후의 사후관리와 유지관리에 대한 단점과 책임, 5. 기타의 분류로 데이터를 준비해갔다.

반대로 우리가 추천하고자하는 제조회사의 제품에 선주가 지정하는 제조회사를 선택할 경우의 단점들을 보완한 내용을 정리하여 포켓 속에 에이스 카드를 만들어 넣었다. 그리고 우리가 추천하고자 하는 제조회사들은 대부분 세계적으로 동종의 장비업체 중에서도 기술과 성능 면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업체로서 주문자인 우리를 통하여 주문을 갈망하는 업체들을 선택하였다. 가능하면 노르웨이의 선주가 지정하지 않은 명성 있는 제조회사를 우선 선택하였다. 선주로부터의 우리의 요구를 거절할 명분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전략은 일차로 선주와 앞에서 이야기한 협상을 통해서 생각해낸 것이었다. 물론 금액적인 면에서도 우리의 바짙(budget:예산)내에 들어오도록 그들의 협력도 유도되었다. 일차 발주 분은 1척분이지만 영국에서 발주 받은 2척의 동종의 선박에 대한 물량이 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채택이 되면 나머지 2척에 대한 장비의 발주도 가능하리라는 기대심리가 그들을 협력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고 판단한다.


4.

일단, 선주와 제조회사들 간에 뒷거래가 있다고 가정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선주를 등에 업은 2~3류의 제조회사들이 세계일류의 명성 있는 제품보다 비쌀 수가 없다는 관점이 있고, 자사제품의 한국 수출을 위하여 갖은 애를 써도 될까 말까 한 제조사들이 고객인 우리 앞에서 배짱을 탕탕 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주의 누구와 뒷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일까. 선주회사의 담당간부, 선주회사 사장 또는 선주회사 간부 몇몇의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몇몇이서 짠 것일까. 책상머리에 앉아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아낼 수가 없는 문제였다.

대책으로서 그 회사의 중역 모두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선주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선주의 판단을 유도해야 하고 그러면 우리의 제안이 받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성능이 우수하고 세계에서 가장 명성 있는 메이카의 제품을 사용해 준다는데 마다할 선주가 있다면 그것은 회사를 빌미로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하는 쓰레기 같은 무리로 간주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을 믿고 투자한 그들의 주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 주주들을 속이고 그들의 개인의 뱃속만 챙기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분석을 마치고 나니 자신이 생겼다. 기필코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엎어버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전화로 협상을 요청할 일이 아니었다. 상대의 중역들을 끌어내야 하는 마당에 일개 과부장이 전화로서는 안 되리라는 판단에서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 명의로 선주사의 사장에게 정중한 서한을 보내게 했다. 회신이 왔고 일정이 정해졌다. 본국에서 부사장께서 협상에 참석차 오슬로에 도착하여 우리와 함께 전략들을 밤을 새워가며 재점검과 리뷰(review)에 들어갔다. 정해진 일자에 정확한 시간에 우리는 그들 사무실 빌딩으로 들어섰다. 인사와 함께 협상은 화기애애한 가운데 이루어졌으나 서로의 품속에는 예리한 에이스 카드가 잔뜩 날을 세우고 있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모든 윤곽을 보여 줄 수가 있었고,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 몇 가지 품목만 그들의 검토시간을 달라는 요청으로 보류되고 거의가 다 전략대로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서 약속된 시간에 우리는 선주의 부름을 받았다. 보류된 몇 가지 품목에 대해 우리가 제시한 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으나 단지 노르웨이 제품으로 채택해 줄 것을 부탁해 왔고, 대신에 금액적인 면이나 모든 면에서 노르웨이 제조사가 적극 협조하도록 입김을 넣어 도와주겠다고 했다. 자국의 제품을 가능한 써 달라는 선주의 희망사항을 우리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단, 제조사들이 협조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제안대로 한다는 조건도 회의록에 남겼다. 이러한 결과 칼자루를 선주와 노르웨이 제조사로부터 완전히 우리의 손에 넣게 된 것이다.

그 다음날 이른 아침 노르웨이의 문제의 제조사 한 곳으로부터 호텔로 전화가 날아들었다. 오늘 꼭 시간을 할애해 달라는 얘기였다. 그는 첫 오슬로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지방공항에서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우린 만났다. 그러나 난 아무 말도 하지를 않았다. 그는 열심이다. 그의 이마에 땀이 흐른다. 그의 얘기가 모두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키포인트의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도 최대한의 금액을 받아내기 위하여 그의 가슴을 열어 보이지 않고선 나에게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우리가 채택하고자 하는 제조사, 즉 그들 경쟁사의 금액의 가이드라인을 알고 그의 카드를 제시 하려고 하기 위한 수작임을 난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포커페이스-포커게임 할 때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중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얼굴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는 표정-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꽤나 흘렀는데도 그는 그의 마지막 카드를 내놓지 않는다. 더 이상 그에게 시간을 빼앗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 그대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멀리서 이른 새벽부터 나를 만나러 온 목적을 잊고 계신 것 같군요. 나는 시간이 없는 몸이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그 때 다시 이야기하든지 합시다. 그 때까지 내가 그대를 기다릴 수 있을 지는 나도 모르지만 말이요”

그 친구는 그 회사의 영업 중역이었다. 새파란 동양의 젊은 놈 앞에서 일침을 맞았다고 생각되는지 금방 자세를 바꾸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이번에 수주를 받을 수 있느냐? 최선의 협조를 할 테니 선처를 해 달라고 애원하는 듯 행동했다. 난 속으로‥‥‥ ‘짜아식, 선주의 힘을 빌려 나를 죽이려 들던 놈이 칼자루가 내 손에 들어오니 꼬랑지를 바닥에 사정없이 내리는군’ 이라 생각하니 그 놈의 꼬락서니도 보기가 싫어졌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는 것은 어느 선이오? 그 선을 얘기 해 보시오. 난 당신이 말하는 선을 그대 회사의 마지막 포기[give up]선으로 듣겠소. 그리고 그 선은 우리가 이미 상담했던 기술적 사항(technical points)과 상업적 사항(commercial points)을 만족시킨다는 전제이어야 합니다.”

내 말이 끝나고 그는 10분간의 고민 끝에 가격을 제시해 왔다. 우리가 채택하고자 했던 세계일류의 제조사보다 10% 정도 싼 금액이었으나, 그들이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제시해 놓고 배짱을 탕탕 부려대던 금액에서 40% 정도나 낮은 금액이었다. 그놈들의 시커멓던 가슴 속을 드러내 보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 더러운 새끼들!”이란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아니, 내가 말한 뜻을 그가 알았더라도 모른 체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금액이 귀하의 최선의 금액이라고는 보지 않소. 이 금액으로 일은 성사될 수가 없어요. 24시간의 시간을 드리겠소. 회사에 돌아가셔서 더 연구해서 정말 최선의 선을 텔렉스(telex)로 주시오.”(그 당시는 팩스가 없었고 텔렉스가 주요 통신전달 수단이었다)

그 다음 날 그로부터의 전문내용이 어제의 선에서 다시 15%가 내려가 있었다. 그리곤 그로부터 전화가 와서는 벌거벗은[naked rock bottom price] 선이라 설명하면서 선처를 부탁 해 왔다. 이런 저런 전략들로 문제의 노르웨이 제조회사들과 모든 일을 목적대로 마무리 지을 수가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있다. 베르겐으로부터 한 제조사의 영업 담당이 오슬로까지 날아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시간에 무척 쫓기고 있었다. 그 외의 상담은 출근하기 전에 호텔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시간에 쫓기다 보니 회의는 초스피드로 유도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 회사는 별로 우리의 관심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지 모른다. 그도 나도 아주 메모지에 쌍방간의 협의내용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속도는 나를 따라오질 못 했다. 그가 나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 하자 그 때 그가 나에게 한 말이 잊혀지질 않는다.

“미스터 정, 나에게 기록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내가 미스터 정과 한 약속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기록해야만 합니다. 내가 베르겐으로 돌아가는 도중 비행기가 혹시라도 추락하게 되면 난 죽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이 기록이 남아서 미스터 정과의 약속을 지키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제가 죽어서라도 미스터 정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함이니 부디 시간을 좀 주십시오.”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로서는 그에게 협조를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그 덕택인지 난 지금도 항상 종이와 연필을 소지하고 다닌다. 나이가 들면서 사라져 가는 기억력도 그렇고 건망증 때문에도 더욱 그렇다.


5.

북유럽 국가들 간에는 국경을 느끼기가 어렵다. 상호 아무런 제약 없이 왔다 갔다 할 수가 있다. 승용차의 뒷부분에 N, D, S, F 등의 스티커만 붙어 있다. 국가의 첫 알파벳을 딴 글자들이다. 오슬로의 텔레비전 내용은 우리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스트레스를 해소 해 줄 만한 유흥업소도 별로 없다. 조용하고 고요함을 즐기는 민족인 것 같다. 우린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3일 간의 여유시간을 가지고 떠났다. 술 한 잔하고 코펜하겐에 바람을 쐬러 비행기를 타고 나간 것이다. 호텔에 체크인을 마치고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즐긴 후 술 한잔 멋지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불행하게도 그 술집의 이름을 난 지금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카카두’라는 기억밖에는.

술집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음악과 대화를 술과 함께 즐기고 있었다. 우린 양주 두 병과 안주를 주문하고 남자들끼리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려 했으나 재미가 별로였다. 홀(hall) 안을 둘러보았다. 우리만 빼고 모든 좌석이 남녀가 어울려 재미나게 이야기하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홀의 구석진 곳에 예쁜 여자들이 그냥 혼자서 서있었다. 난 용기를 내어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말을 걸었다. 우린 한국에서 온 비즈니스맨들이고 덴마크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데 실례가 안 된다면 우리 좌석에 오셔서 함께 합류하여 한국과 덴마크에 대한 애기들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그녀로부터 쾌히 승낙을 받고는 우리의 좌석으로 데리고 왔다.

불가능하리라고 믿었던 동료 둘의 얼굴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호기심으로 환해졌다. 그들은 낱잔 술을 주문해서 마시는데 비해 우린 양주 두 병을 통째로 주문해서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한국 사람은 술고래인 양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의아해 했으나 우리의 설명으로 고개를 끄떡이고 한국인의 화끈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린 그녀가 왜 그 곳에 혼자 서있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술 한 잔을 마음 가는 신사와 함께 하고 싶어서 혼자 찾아 온 여성은 파트너가 생길 때까지 그렇게 서 있는 것이 그 술집의 전통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함께 온 동료들을 위하여 두 사람의 여성이 더 있었으면 좋다고 판단하고 동료 둘도 여성파트너를 구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그것은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거절했다. 동료 둘은 마음뿐이지 용기가 나지 않아 쩔쩔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일어나서 똑같은 방법으로 코 크고 키가 큰 눈이 푸른 여성 둘을 초대해 와서 합석시켜 주었다.

술은 두 병만으로 부족했다. 또 두 병을 시켜서 바닥이 보일 즈음 모두 취기가 높아 옴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술을 마시는 것은 현명하지를 못하다고 판단하고 모두에게 파트너와 짝지어서 헤어지기로 했다. 내일 아침 호텔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우린 쌍쌍이 팔짱을 끼고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그들이 어디를 가는지는 나로서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난 파트너 그녀가 마치 내 애인이나 되는 양, 팔짱을 끼고 시내의 거리를 산보를 하면서 여러 가지의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고, 한국에서는 구경할 수가 없는 섹스 숍 구경이 하고 싶었다. 전에도 가본 적이 있었지만 부끄러워서 바깥에서 넌지시 구경만 했을 뿐 차마 숍 안에 들어가서 그런 이상한 것들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대화를 건넬 엄두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인의 성문화에 대한 관습이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가 주었다. 우린 섹스툴 숍을 네 군데 정도나 다니면서 섹스에 이용되는 기구들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들을 설명 들을 수가 있었다.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되어 있는 수많은 기구들이 섹스의 즐거움 추구를 위한 상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성 기구 산업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산업이 발전하려면 어떤 것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의 체계적인 아이디어가 없어서도 어려울 것 같았다. 사회기능에 악영향을 주지 않고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의 연구가 한 번쯤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섹스는 인종에 관계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관심사항이고 인생의 기초사항이기 때문이다. 파란 눈의 은빛머리의 이국의 아가씨와의 다음 데이트 내용은 읽는 이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생략한다.

다음날 아침 동료들과 식당에서 만났고 모두가 즐거운 느낌이다. 우린 영화 한 편을 일반극장가에서 가기로 하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성인전용의 영화관도 아니다. 미성년자도 관람 가능한 영화라고 했다. 영화관 안에는 어린 초등학생,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도 입장객의 40~50%정도로 많았다. 막상 영화의 내용을 보니 이건 완전히 ‘미성년자관람 불가’의 영화였다. 아주 노골적인 정사의 장면이 적나라하게 연출되었고 그 때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환호와 웅성거림이 극장 안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어린 관람객들이 성에 노출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포르노 전용 상영관은 아니었고 일반 영화관이었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어린이들을 보호하지 않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철두철미한 사회규범이 적용되는 덴마크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나 모자란 생각이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성을 그렇게 어린이들에게 노출시켜서 성을 아름답게 스스로 이끌어 나가지 않으면 사회에서 탈락하는 그런 풍조가 뿌리내려 있었던 것이었다. ‘여러 가지의 노출된 성으로의 접근을 경험하라! 그리고 스스로 판단하라! 어떤 성을 추구 할 것인가를, 추악한 성이든 아름다운 성이든 스스로 판단하라!’ 뭐 이런 저런 정책인 것 같았다. 추악한 성을 추구하는 자는 어디를 가도 냉대를 받지만 아름다운 성을 추구하고 그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은 사회의 환대를 받는 그런 풍조일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성은 자연스런 인간의 표현이다. 자연스런 포옹이 그렇고 키스가 그렇다‥‥‥’는 인상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모든 학교 교육이나 사회 교육이나 가정에서 ‘이성을 아끼는 마음’에서 출발하며 그 뿌리가 깊게 내려져 있음을 도처에서 느낀다. 그들의 생활습관의 한 부분이 되어 있는 것이다.


6.

오슬로에서 1개월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에서 호텔 생활이 진력이 났다. 아침 식사는 호텔 내의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해야 했고 한국 음식이 무척 그리워졌다. 그럴 때는 중국식 레스토랑에 가야만 쌀로 만든 밥과 맵고 짠 음식을 먹을 수가 있지만 매일같이 중국 음식을 즐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호텔 비용 110불에다가 식사까지 그런 식으로 하면 받아 온 출장비가 허락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식사비용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정말 비싸다. 싼 것이라고는 대중교통비와 북해에서 잡히는 물고기와 크릴새우 정도라고 생각된다. 일반 레스토랑에서는 볶음밥 등과 같은 쌀로 만든 밥은 구경할 수가 없다. 그들은 쌀 대신 감자를 주식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슈퍼마켓에서는 봉지에 든 쌀을 구입할 수가 있으나 대부분이 열대지방에서 생산되는 안남미다. 그러나 그 품질은 아주 우수하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심각한 먹는 문제가 대두 되었다. 본국에서 출장 오신 부사장님이 우리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노르웨이의 대그룹인 아커스 그룹에 얘기를 해서 오슬로 변두리의 하우케토에 있는 독신자 아파트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가 있었다. 호텔보다는 아파트가 훨씬 좋았다.

우리는 자주 들르는 중국식 레스토랑에 부탁해서 중국의 라면과 쌀을 구입하였고 틈나는 대로 슈퍼마켓에 들러 먹고 싶은 식료품을 구입하여 그런 대로 입에 맞는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입에 맞는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먹는 음식의 맛과는 비교될 수없는 초라한 맛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크리스마스가 닥치자 노르웨이 국민들은 근 30일 간이라는 장기간의 휴가철이 되었다.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직장들의 장기휴가인 것이다. 학생들 방학하는 것도 아닌데. 우린 약 10일간의 일정으로 여행 계획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다. 10일 간만 여행하고 우리는 사무실에 나가서 업무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슬로에서 배를 타고 코펜하겐에 가서 거기서 기차로 스톡홀름 그리고 헬싱키를 거쳐 오슬로에 도착하는 일정을 짰다.

북구권의 바다는 겨울철에도 얼음이 언다. 그 얼음을 여객선이 깨면서 항해를 한다. 이러한 선박의 선체구조는 쇄빙구조(Ice breaking structure)로 되어 있다. 대낮에 출발을 하면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해안을 구경 할 수 있다고 하나 우리의 스케줄은 그러하질 못했다. 여객선 안에는 영화관, 나이트클럽 형식의 댄스홀, 바, 수영장 등등, 많은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우린 여기저기서 즐기다가 댄스홀 앞좌석에 앉아 비어를 즐기면서 댄스를 즐기는 모습에 눈을 팔았다. 댄스홀 무대에는 나이 많은 여행객은 별로 없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의 학생이 대부분이고 댄스의 솜씨뿐 아니라 열기가 대단하다.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예쁜 고등학교 여학생의 옆 좌석에 자리를 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노르웨이의 여학생이었고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국적의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가는 거란다. 그 여학생뿐 아니라 그녀가 알고 있는 많은 친구들이 국적이 다른 이성의 친구가 있다고 했다. 국적에 대한 이질감이라든가 하는 것은 아예 없다. 국가의 이름만 다를 뿐 전혀 자국민과의 차이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단다. 이들 국가간의 자유스러움이 그런 경계를 잊어버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린 정해진 도시마다 들러 이것저것 많이도 보고 느끼고 배웠다. 그 때 그런 것들을 모두 기억해 낼 수 없음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 북구의 겨울 철길은 완전히 눈으로 뒤덮여 있다. 보통 1~2미터의 눈이 철로 위에 쌓여 있다. 그러나 기차는 아무 탈 한번 없이 잘도 달린다. 기술인 것이다.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기술자라면 금방 느낄 수가 있다. 북구의 기차는 대부분 ‘아세아’라는 스웨덴 회사의 제품이다.

북구의 기술은 다방면으로 아주 뛰어나다. 한 가지만 소개하면 난방기술이다. 그들은 조그만 주택 하나를 건축하는데 약 1년 간의 시간이 걸린다. 이런 오랜 시간이 왜 걸려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떠한 험난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보금자리는 보금자리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유리창은 유리가 이중으로 되어 있고 그 유리 사이에 진공처리를 한다. 난방의 목적이다. 자동차, 건축 등 다방면에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난방의 기술이 숨겨져 있다. 난방에 대한 기술을 배우려면 북구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많은 부분을 우리 한국에서도 적용 가능하리라고 판단된다.


7.

노르웨이에서 이발한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발소에 들어서면 여러 가지 머리 모양의 사진을 보여 준다. 그 사진 중에는 우리와 같은 동양식 머리 스타일은 하나도 없다. 가장 유사한 사진의 형태로 머리를 다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발 기술도 형편없다. 사진과는 아주 딴판의 머리 모양이 나온다. 그러나 인상을 써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잘려진 머리를 다시 이어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발한 사람만 웃음거리가 되는 거지.

우리의 머리는 목 뒷덜미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그런 모습은 마치 한국에서의 연예인처럼 보일 것이다. ‘히피족같이 보이겠지’ 참다못한 동료 하나가 이발소에 다녀왔다. ‘하하하’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귀국할 때까지 끝내 머리를 자르지 못했다. 장발의 예술인처럼 하고 귀국한 것이었다. 이발소에서는 머리를 잘라줄 뿐 면도, 안마, 세척의 서비스는 전혀 없었다.

오슬로에는 노르웨이 최대의 국립 미술관이 있다. 미술에는 문외한이나 기회가 있어서 가 보았다. 카를 요한 거리에서 가까운 곳의 오슬로 대학 구교사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의 노르웨이 미술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대표적 화가 ‘뭉크’의 작품들이 인기가 높았다. 난 문외한이어서 보아도 무엇이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오슬로에는 프로그너 조각공원이 있다. 공원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누드조각 작품이 양쪽에 나열되어 있고 공원의 중간에 인간세상의 갖가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모습과 표정들의 누드로 뒤엉켜진 조각기둥이 있다. ‘모놀리트‘의 인간기둥이라고 불리고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작품이다. 인간기둥을 중심으로 공원주위에 남녀의 누드조각 작품이 가득 자리하고 있다. 누드조각 중 남성의 성기는 유난히 반질거린다. 수많은 여성들이 만지고 이상한 짓들을 해서 그렇단다. 정말 조각이지만 탐이 나기 때문이다. 공원의 그 많은 누드조각 작품들 모두가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 단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과 그가 평생을 바쳐서 만들어낸 공원이란 것을 알면 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인들에게는 크나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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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목원진님의 댓글

목원진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해영 작가님!
7 폐지랄까 7항목에 걸친 <My Sogubnoly In Norway >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약 30 수년 전 카사블랑카에서 일 끝마치어 돌아오는 길 유레이파스(유럽여행권)를 구입하여 자유 진영의 나라는 전부 혼자 여행하였었지요.
그래서 저도 같이 들린 곳이며 정 작가님처 럼 길게는 머물지 않았으나, 느끼는 감상은 똑같았습니다. 하나 우스운 실패 담을 소게 합니다. 오슬로에 들려 레스토랑에 갔는데, 메뉴를 보아 머리 단어는 몰라 다음이 비 후 테 키라 쓰여있어 그것을 손으로 주문했지요. 내심 미드엄의 반 익은 스테키를 맛있게 먹으리라...,상상하면서 ,잠시 있다 나온 접시 위의 요리는 프라이팬에서 튀긴 물고기였습니다. 말하자면 물고기의 스테키라 합니다. 그후 그 스테키는 잊을 수 없는 실패 담이 되었습니다. 스톡크호름, 코펜하겐, 덴마크, 비슷한 경험도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훼리보트에 열차까지 태워 국경을 건느는 것도 신기 했었었습니다. 밥이 그리워 중국 요리점에 가나 알량미 쌀이요 기름기 있는 쌀밥이 그리웠던 생각 세삼스럽습니다. 돛단배 같은 바이킹의 박물관 등에서 보는 바다의 탐험가,모험가, 해적, 등 지금은 해양 선진국으로 세계에 그들의 기술을 과시하고 있군요. 그들은 항해기술 선박제조 그뿐만 아니라 의료기 치과 보철 기술에서도 매우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의과대학과 치과대학에 들려 직접보고 느끼었습니다.
나 혼자 만이 옛날에 혼자 들렸던 곳이려니 했던 것이 저의 사회를 해주신 정 작가님이 같은 나라들을 들리어 선박 수주에 따라 오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멋지게 극복하면서 성공리에 마무리 하는 과정을 보아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긴 노르웨이 환상
수고가 많았습니다. <망에 탁!> 합니다.

정해영님의 댓글

정해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문의 졸필을 읽어주셔서 망에탁^^입니다.
누구나 외국여행중 레스트랑에서의 에피소드를 하나씩은 만들지요.
내가 중국어 모르고 식당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아서 국제공용어 중 하나인 손짓으로 메뉴명도 모르고 주문을 해서 즐긴 적이 있습니다만 다행히 맛이 꽤나 좋았답니다. 그 후론 영어나 일어가 통하는 고급레스토랑에 가든지 아니면 메뉴판을 들고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물어보고 주문을 한답니다. 어떻게 요리하느냐? 짜냐? 싱겁냐? 소스는 어떤 종류이냐? 생선은 어느 바다에서 잡은 것이냐? 량은 어느 정도냐? 등등을 물어보지만 나의 그런 모습을 그들은 조금도 까다롭게 생각지 아니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답니다.
오슬로에서는 중국레스트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장차림이 아니면 손님을 받아들이지 않지요. 오슬로의 SAS호텔 지하에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려다가 정장차림을 하지 않아서 거절하길래 웨이터를 꼬셔서 웨이터가 입고 있는 양복윗저고리를 벗겨서 입고 들어가서 놀웨이 아가씨들과 출줄 모르는 춤을 즐긴적도 있었답니다. 그때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웃음만 나온답니다.

정성들여 올려주신 댓글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이렇게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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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고(肥滿考)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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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이 정신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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