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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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상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8건 조회 853회 작성일 2006-08-24 21:56본문
얼마 전에 같은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팔십을 넘은 연세여서 살만큼 살고 떠났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잘 돌아가셨다고 입을 모았다.
나도 그들과 같이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바싹 마른 데다가 키가 껑충해서 마치 한 줄기 갈대 같았는데,
파자마를 입고 여기저기를 휘청거리며 다녔다.
그렇게 다니다가 지치면 아무 곳이나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머리를 젖히고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그런 모습이
사람들은 무섭기도 하겠지만, 누구 하나 직접 나서서 인도해 드린 일은 없었다.
일찍 혼자가 되어서 외아들과 함께 살았는데,
부부가 직장에 나가버리면 온 종일 혼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치매가 있는 할아버지는 차려놓은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하는데,
가끔 딸들이 찾아와서 쥐어드리는 돈으로 가게에서 빵이나 과자를
사 먹는 일도 있었다고 했지만 그런 노인을, 어떻게 혼자 방치해
둘 수 있느냐 하는 말뿐이었다.
남의 일이라, 늘 흉만 보았지, 누구 한 사람 선뜻 자신의 부모처럼 모셔다가
식사 한끼 대접해 드린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저 노인, 어서 돌아가셔야 할 텐데.....,"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곤 하였다.
소문은 소문이므로 곧이곧대로 믿을 것은 못되지만,
할아버지를 방치하듯 내버려 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았다.
외아들도 누나들 사이에 끼어 영구차에 실리는 관 앞에서 울고 있었다.
며느리는 먼 산 보듯 보면서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며느리야 따지고 보면 남이지만, 어떻게 치매 노인을
그렇게까지 방치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한 여름 햇살이 더 따가웠다
할아버지가 떠난 지 보름쯤 되는 일요일이었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아들이 화려하게 단장을 한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가는 것을 봤다.
문득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허름한 잠옷을 입은 채 휘청거리던 모습처럼 바람이 분다.
간밤에 비가 내린 까닭일까.
한결 싱그럽게 느껴지는 아침인데 부끄럽다.
입만 가지고 이 글을 쓰는 내가 그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댓글목록
오형록님의 댓글
오형록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 속 자식들의 모습과 다를 거라,
저 역시 내일 제 모습을 장담할 수 없기에...... ㅠ.ㅠ
김진관님의 댓글
김진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숙연해 지는군요, 고운 글 접하고 갑니다.
손근호님의 댓글
손근호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가정과 가족이 한 집안에 있습니다. 가정이 아니고 가족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는 척박한 뉴스를 보면...늘 가슴이 쓰리기도 합니다.
한미혜님의 댓글
한미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홀로 계신 어머니가 전화를 안 받으시면
괜한 걱정!
혹 낯선 시간에 전화드리면 걱정하실 까
전화 못 드리고 , 이래 저래
너무도 부족한 막내 딸이지요!
김석범님의 댓글
김석범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가슴에 다듬이로 두들겨 봅니다...
오영근님의 댓글
오영근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슴에 새기며 글 읽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김상희님의 댓글
김상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9월 한 달도 보람된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