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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뒤에 숨은 4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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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순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1건 조회 1,608회 작성일 2007-04-01 11:35

본문

퇴근하는 새벽녘 습관처럼 철문 위 고장 난 전구 대신
보안등 켜진 대문 열고 들어서는 내 집 앞
절친한 친구가 부실 시공한 새집 몇 년 살다 팔고 간
노부부 사는 앞집 담 옆에 손잡이 두 개 달린 깨끗한 냉장고
어제도 서있고 비 오는 오늘도 서서 빗물 흘리고 있는 막다른 골목길

서너 대 주차할 수 있는 골목길에 앞 차가 나가야만
뒤차가 나갈 수 있는 도시가스관 묻어 있는 곳 혼불이 두 번 찾아와
빠져나간 자리 언제 집안으로 들어갈 날만 기다리는 값비싼 냉장고
냉장고 뒤 검은 중형차는 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에 있어
앞자리에 차들이 있어도 상관 없는 검은 차

냉장고 한 쪽 손잡이 사내가 잡고, 한 쪽 손잡이 아내가 잡아
열고 닫는 사이 정지해 있던 富는 쏟아져 나가
냉장고 들여 놓을 수 없는 좁은 방 두 칸짜리로 이사하던 날 밤
어두워 앞 집 전등 켜주길 원 했지만 고장 난 전구 대신
흐린 보안등 켜져 있는 골목길

새벽녘 富의 속도계 언제부터인가 멈춘 채 수리하지 않으면
영원히 빨간 바늘이 움직이지 않을 둥근 원 친구 옆에
속력 내는 오른쪽 손잡이 작동시키지 않아도 움직이는 스쿠터
양쪽 브레이크 살짝 잡고 몰고 들어오는 골목길에
검은 차는 주차해 있지만 냉장고는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

이사 온 집 여자 홀로 주차된 차 몰고 나가는 이른 아침 골목길
냉장고 뜨거운 열 발산할 자리 없어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예쁜 식탁과 함께 중고품 수집 차에 실려 골목길 빠져 나가고
커다란 유리 밑 반원으로 잘려진 구멍으로 찬바람 불어와
숙여진 어깨에 스며드는 골목길

봐도 알 수 있고 안 봐도 알 수 있는
겨울에서 봄 문턱에 선 냉장고 코드는 어느 집 코드에 꽂혀
몸은 뜨거운 열 발산하고 결빙의 아픔 참으며 빗물 씻어낸 자리
마르도록 신음소리 감추며 주인 잃은 섧음에 잠겨
오늘도 문 열리고 닫히나
다시는 냉장고 문 사내도 잡지 말고 아내도 잡지 않아
골목길에서 비 맞지 않는 4월 시작 알리는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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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월란님의 댓글

이월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누구나 지나칠 수 있는 미미한 사물에서
늘 깊은 시심을 이끌어내시는
시인님께 감탄합니다.
늘 귀한 시 뵙게 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행복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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