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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부작 장편소설 자애의 덫 제 2 장 유혹(誘惑)의 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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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치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162회 작성일 2007-06-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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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유혹(誘惑)의 저 편


그날 이후, 지수는 우울 증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남을 지나치게 경계하거나, 자신을 극단적으로 학대할 정도의 심각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성격 자체가 적극적이거나 사교적이 아닌 탓이기도 하지만 예전과 달리 말수가 적어지고 몇 안되는 출판사 직원들과도 어울리기를 거부하는 빈도(頻度)가 잦을 정도로 일상의 리듬이 균형을 잃고 있었다.
지수의 어두운 그림자 놀이는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었다.
바로 그날, 퇴근 무렵 출판사 사장인 권인규가 지수를 사장실로 호출했다.
"보아하니 요근래 들어 미스 김의 표정이나 태도가 꼭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닌가?" 
권인규는 호출의 이유를 분명히 했다.
"…아니에요, 사장님."
지수는 사장의 호출을 인정하면서도 사적인 일로 이런 호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럼 다른 이유라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뭐했는지 권인규는 다른 각도에서 지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지수는 의외로 까다롭게 추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했다.
"신춘문예 때문에…"
지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비생산적인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충동에서 비롯된 임기응변이었다. 그리고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자 권인규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이건 내 실순데 그래."
"아니에요, 사장님. 제가 오히려 죄송해요."
지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는 게 고역이었다.
"아… 아냐. 내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어."
"…"
지수는 굴절 없이 받아들이는 권인규가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권인규가 지수에게 글을 쓰는 선배로서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미스 김, 글을 쓰다보면 자신 스스로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는 사람이라면 일생에 있어 한 번은 앓게 되어 있는 홍역과도 같은 거지. 그 시기를 넘기면 그만큼 글에 대하는 마음의 시야가 성숙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거든… 그런데 그 시간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글에 대한 리듬이 깨지는 경우도 없잖아 있으니까 항상 자기 관리에 정신적 투자를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해. 예를 들면 독서보다는 클래식을 들으며 나름대로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지."
"… 네, 사장님."
지수는 그리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새겨둘 만한 조언 정도는 된다는 생각을 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야. 좋은 글은 자기 자신의 아픔이 없이는 창조되지 않는 그런 성질의 것이니까."
그런데 지수가 대뜸 딴소리로 권인규를 머쓱하게 했다.
"… 사장님 제가 평소답지 않았다는 거 부산 선생님에겐 아무 말씀도 안했으면 해요. 그럼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
권인규는 그만 지수의 엉뚱한(?) 아니, 뜬금없는 부탁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감히 설명할 수 없는 느낌과 이해할 수 없는 의문부호가 마음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앉는 듯했다.
그 의문부호 속에는 2년 전의 겁 많고 수줍음을 타던 솜털 보송보송한 앳된 소녀가 아닌 숙녀로서의 성숙함이 한결 돋보이는 그런 관심의 벽 또한 도사리고 있었다.
지수는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뒷모습을 뜯어보듯 집요하게 훔치는 권인규의 깊고 은밀한 눈빛을!

***

그가 고등학교 동기며 마산에서 6년째 출판업을 하고 있는 권인규의 전화를 받은 건 저녁 7시경이었다.
"인규, 오래간만이구나."
"그래. 오늘은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셈이군."
"하는 일은 어때?"
"지방 출판사 사정이야 불을 보듯 뻔하지. 간판 안 내리고 다달이 애들 월급 꼬박꼬박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봐야지. 정말이지 죽을 맛이야. 넌 어때?"
"성수기인데도 내수 시장이 워낙 침체한데다 경쟁업체까지 저가로 치는 판국이니 느끼는 체감경기는 별로야."
"그건 그렇고…"
친구 녀석이 뜸을 들이자 그가 말을 가로챘다.
"왜? 주저하는 걸 보니 얘기할 게 있는 모양인데."
"… 그래. 이번 건은 꼭 말을 해야겠기에 전화 했어. 지수에 관한 애기야… 요즘 영 우울해 보여… 의욕 상실 같기도 한데… 그래서 퇴근 무렵에 잠깐 불러서 얘길 했지."
"… 했는데?"
의외로 마치 남의 일처럼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아니?! 겨우 하는 말이… 이거 뜻밖인데 그래. 난 당연히 궁금해 할 줄 알았는데… 이거 괜히 내가 쑥스럽구먼."
"인규, 핵심만 말해."
그가 군더더기 서론은 듣고 싶지 않으니 본론만 말하라는 투로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자식, 그 말투는 세월이 가도 그대로구먼, 그래, 네 녀석 천성이 장기 출장 갈 이유는 없겠고… 실은…"
권인규는 지수와 주고받은 얘기를 대충 말하고는 끝에 가서는 자기 감정을 덧붙였다.
"나가면서 대뜸 하는 말이… 그간에 있었던 지수 자신의 행동거지가 자네 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말을 했거든… 물론 널 의식한 나머지 할 수 있는 부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떤 의미를 강조하는 듯한 인상이 풍겼단 말이야. 단순히 신춘문예 때문에 우울하다는 건 괜한 사족일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야."
"…?!"
그는 그날 이후로 전화 한 번 하지 않은 지수의 감정 정도는 충분히 읽고 있었지만 친구 녀석의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게 아니거나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권인규가 사족을 달았다.
"어쩌면 의도적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그는 의도적이라는 표현이 신경에 그슬렸다.
"인규, 복선 따윈 깔지 않았으면 해. 그건 글쟁이에게나 있을 수 있는 추론(推論)일 뿐이야."
"자식, 말하는 투하고는… 하여튼 지순 말이야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고 있는 게 분명해. 이럴 땐 내 한마디보다 자네 한마디가 묘약으로 작용할 수가 있어."
"무슨 뜻이지?"
"난 단지 지수의 사장일 뿐이지만… 넌 지수의 보호자니까 하는 소리야."
"…?!"
"듣고 있는 거야?"
"계속해."
"친구로서 한마디 더 하지. 무소식은 희소식이란 말은 있지만 무관심은 그런 개념이 아니라고 봐."
"그래, 한 번 만나보지."
그냥 지나치는 말로 내뱉은 건 아니었다. 그날 밤에 있었던 행동에 대해 해명 아닌 해명 정도는 해야겠다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땐 꼭 들려. 한 잔 하게 말이야,"
"또 거길 동행할 참이군,"
"자식, 머리 회전 하난 빠르구먼,"
"꽤 자극적이었으니까. 후후!"
"넌 그때 딴판이라 할 정도로 선동적이더구먼, 애들이 기겁할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하하! 자, 이만 끊어야겠어."
"그래, 한 번 들리마, 수고!"
전화는 끊어졌다. 담배를 입에 문 그가 불을 붙이다 말고 멈칫했다.
그는 뇌리를 사정없이 때리는 예리하고 또렷한 환청(幻聽)에 흠칫했다.
"넌 지수의 보호자니까 하는 소리야!"
그가 중얼거렸다.
'보호자라고? 보호자…"
결코 처음 들어보는 말은 아니었다. 또한 친구 녀석이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도 오해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바로 그 시간, 지수는 창동 거리를 배회(徘徊)하고 있었다. 오늘만은 목적 없이 발길 닿는대로 쏘다니고 싶은 충동이 전부였다.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어쩌면 여태껏 그 누군가가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과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예고되지 않은 방문을 기대하며 퇴근 즉시 아파트로 직행해 온 자신에 대한 미움에서 비롯된 반발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동안 방황했을까?
굽이 높은 하이힐 탓인지 다리가 아팠다. 갑자기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었다.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길모퉁이 3층 건물에 걸려있는 '까페 아마조네스' 돌출 네온 간판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지수는 통유리로 된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촉광이 낮은 조명 탓인지 자욱하게 깔린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보였다. 별로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퇴근 시간 직후라 그런지 빈 자리가 눈에 띠지 않을 정도였다.
지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촌무지랭이처럼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손님 거의가 감각적으로 톡톡 튀는 20대 초반 세대들이었고 같은 또래의 남녀 커플이 대부분이었다.
지수는 짐짓 여유를 가장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며 마침 비어 있는 카운트 바로 옆 테이블로 다가갔다.
어느 누구도 지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지수는 문득 사람이 살지 않는 별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지수는 남자 앞에서 보란듯이 담배를 꼬나 문 바로 옆 자리의 대학생인 듯한 여자를 힐끔거렸다. 멋이 아닌 방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종업원이 커피 잔을 지수 앞에 내려놓았다. 지수는 잔을 들어 원두커피 고유의 향을 음미해 본다.
문득 비어 있는 앞자리가 눈에 거슬렸다. 왠지 모르게 허전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유배된 듯한 참담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처음으로 가슴에 와 닿는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은 그 누구를 생각하는 그리움이기도 했다.
'선생님, 이 지수는 왜 늘 이렇게 혼자라야 하나요? 언제까지 이래야만 하나요? 선생님이 보고 싶어요…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토라지지 않을게요.'
메아리로 들을 수 없는… 그래서 들리지도 않을… 그 누구에게 던지는 원성이었다.
바로 앞자리의 연인인 듯한 한 커플의 진한 정겨움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문득 지수는 오지 말았어야 할 곳에 굴러 떨어진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혼자란 게 궁색했다.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는 용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수는 그만 까페를 나와 버렸다. 융화될 수 없는 이질적인 세계였다.
거리는 형형색색의 네온간판 불빛들의 아우성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막상 밖으로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 감각이 잡히지 않았다.
마땅이 갈 곳이 없다. 이대로 서서 돌처럼 굳어버렸으면 싶었다.
지수는 미로를 가듯 방황하는 자신이 그지없이 미웠다.
'선생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눈가에 촉촉한 물기 같은 게 맺히고 있었다.

***

"어서 들어와."
심혜주는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가 혜주의 난데없는 초대 전화를 받은 것은 퇴근 무렵이었다. 남편이 마침 해외 출장중이니 집에 와서 저녁이라도 하자고 했다.
그녀는 친구의 호의라고 생각하고 흔쾌히 응했다.
심혜주는 사업가인 남편의 재력(財力)을 과시라도 하듯 62평 고급 빌라에 살고 있었다. 빌라의 내부 치장은 거실 소파 세트 하나만 보더라도 어떤 수준인지 감히 짐작이 갈 정도로 사치스러웠다.
심혜주 말로는 물 건너 온 것이라 했고, 가격으로 따진다면 서민 아파트 한 채 값은 족히 된다고 했다.
그녀는 두 서너 번 와본 적은 있지만 그때마다 꼭 이렇게 해놓고 살아야만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소파에 앉았다. 확실히 뭔가가 달랐다. 달리 꼭 뭐라고 할 수 없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위화감 같은 거북살스런 감촉과 탄력이 힙을 타고 허리에까지 번졌다.
그녀는 차라리 밖에서 만나자고 할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심혜주가 철 지난 수박을 담은 금빛 찬란한 쟁반을 통유리 탁자에다 내려놓으며 말했다.
"제 철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먹을만 할 거야. 영감 회사 간부 마누라가 어제 저녁에 갖고 왔지 뭐니."
그녀는 관심에도 없는 말을 내뱉으며 소파 맞은 편에 앉는 심혜주를 건성으로 쳐다보며 한 마디 툭 쏜다.
"그 여편네 돌연변이인 모양이지?"
심혜주가 눈을 크게 뜨고 정색을 하며 물었다.
"돌연변이라니?"
"이 수박이 비닐 온실이 낳은 돌연변이잖아."
혹평(酷評)으로 받아들이면 똥개 눈에는 누런 똥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얘는, 그 비꼬는 말투는 예나 지금이나… 정말이지 못 말려."
심혜주는 내심 간부 마누라 운운한 게 퍽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성의를 보이는 척 했는데 그건 안중에는 눈곱만큼도 두지 않고 고약한 말로 무시해버리는 그녀의 소행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나쁜 기집애! 성의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요걸 뭘로 골탕을 먹이지.'
괜한 심통이 아니었다. 자존심 문제였다. 아니 어쩌면 친구인 성아희에게 줄곧 상대적으로 느끼고 있는 열등감에 대한 반발이었는지도 모른다.
둘은 여고 시절부터 대학 4학년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승패란 개념으로 저울질한다면 아희 쪽이 승률이 높은 편이었다.
그녀는 대접이라고 내놓은 것이니까 체면치레는 해야했는지 수박 한 조각을 집어들었다.
"그래, 휼륭하신 영감님께서는 언제까지 출장이신가?"
좀은 비꼬는 듯한 투라 심혜주는 약이 올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장장 보름간이야. 아까 전화 왔는데 지금은 싱가포르에 있데. 아직 5일이나 남았지 뭐니. 이젠 기다리는 것도 지겨워 죽겠어. 너무 편해서 그런지 시간 죽이는 것도 고역인거 있지."
그녀가 냉큼 받아쳤다.
"언제는 해방된 민족이라며 미치도록 좋아 죽겠다고 하더니."
"얘는, 그것도 한 두번이고 하루 이틀이지… 하여간 지겨워. 근데 말이야 이런 자유도 자주 있으니까 한 마디로 정신적으로 예민해지는 거 있지."
그녀가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자유 부인인 주제에 예민하게 받아들일 게 뭐 있다고."
"그런 거 있잖아, 색안경 같은 거 말이야."
"혹시 저쪽을 두고 하는 말이니?"
심헤주 시댁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응, 해외 출장을 간 다음 날부터 대낮에 전화질을 하거든,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거 아니니."
그녀가 대뜸 촉수(觸手)를 세운다.
"혜주 너, 혹시 책(責)잡힐 행동이라도 한 모양이구나."
어디까지나 농담이었다.
그런데 혜주는 그런 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희 너… 듣고보니 색깔도 색깔이지만 어폐까지도 다분한 말까지… 설마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
"…?!"
그녀는 그런 쪽으로 확대 해석해 버리는 혜주의 저의가 별로 탐탁하지 않았다.
혜주는 그녀의 저의를 알아야겠다는 듯이 계속 물고 늘어졌다. 추궁이라도 하듯.
"아희 너, 어떤 뜻으로 한 소린지 분명히 해주면 좋겠어, 그냥 농담 삼아 한 소리는 아닌 것 같애."
그녀가 심혜주의 도전적인 말투에 자신도 모르게 맞받아 쳤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쪽에서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그런 말을 할 필요까지 없었잖아."
이번에는 혜주가 시비를 거는 투로 대거리를 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얘기니?"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는 세상이잖니?"
순간 그녀는 내심 아차 싶었다. 본의 아니게 실언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낭패감 때문이었다, 분위기에 따라 이유 없이 발끈하는 심혜주의 각이 지는 성격을 미처 엄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심혜주가 그냥은 넘기지 않겠다는 듯이 잽싸게 반격을 가했다.
"역시 심리학을 전공한 학사님이라 다르긴 다르구나. 하지만 예외는 항상 있기 마련이지. 정설로 통용되는 추론의 개념을 나한테까지 적용할 필요까지는 없어, 만에 하나 색안경을 쓰고 볼 정도로 내 행동에 약점이 있었다면 이런 날 아희 너한테 전화 따윈 하지 않았을테니까 말이야."
"하긴…"
심혜주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는 그녀를 통해 여자만의 이미 구겨질대로 구겨진 자존심은 쉽사리 회복이 되지 않았다.
'아희 너 오늘만큼은 그냥 용서가 안 돼! 상실감과 비참함이 어떤 건지 한 번 당해 봐!'
그건 음모였다. 어디까지나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그래서 더더욱 스릴이 느껴지는 그런 음모였다.
그것은 사사건건은 아니지만 때로는 얄미울 정도로 때로는 괘씸할 정도로 자존심을 긁는 친구에 대한 자기방어이기도 했다.
심혜주는 내심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었다. 아니, 어쩌면 이런 날이 도래하기를 염탐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 예전처럼 괜한 호승심에서 입씨름을 한다는 게 쓰잘데기 없는 소모전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얘들은 아직 안 들어온 모양이지?"
혜주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품안에 가둘 나이도 아닌데 때가 되면 들어오겠지."
혜주는 약이 올랐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렁퉁당 그냥 넘어가버리는 아희의 고약한 심뽀가 더할 나위 없이 얄미웠다.
"…"
'계집애, 옹졸하기는.'
그녀는 심혜주의 시큰둥한 반응이 메스꺼웠다. 한 번 토라지면 쉽게 풀어지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여고 때부터 익히 경험해서 알고 있었지만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제 버릇 개 못주듯 빛 바랜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편집에 가까운 아집에 적잖이 불쾌했다.
이렇듯 둘은 참우정의 친구라해도 시비를 걸 만한 여지가 없는 그런 사이지만 때로는 그 모든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로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으르릉거리는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런데 심혜주가 처음으로, 그것도 여지껏 불문율 그 이상으로 금기시 해왔던 말로 그녀의 자존심을 자극한 건 잠시 후였다.
"글쎄… 영감이 없으니까 옆구리가… 아니 잠자리가 영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허전한 거 있지."
그건 영감 아니, 남편이란 작자가 아예 없는 아희 너는 허구(許久)한 날 독수공방의 밤을 어떻게 지내지 하는 뜻으로 빗댄 말이었다.
노골적인 인신공격이었다.
"…!"
그녀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에 그만 함구(緘口)로 대신했다.
결국 혼자라는 약점을 안고 사는 여자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치욕(恥辱)과도 같은 확인사살을 당한 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냉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 발끈 화를 내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은 커녕 담담한 얼굴로 심혜주를 직시했다.
- 왜지?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 있을 네가 아닌데.
- 아냐. 이럴 땐 냉정이란 게 필요해.
- 냉정도 냉정 나름이지. 이건 친구로서의 경우를 일탈한 악담이잖아.
- 그래, 악담이지.
- 그런데 넌 부처라도 된 듯 초연 아니 해탈의 경지를 걷고 있잖아. 그 이유가 뭐지?
- 사실이니까.
심혜주는 처음으로 던진 그물에 피라미 새끼 하나 걸리지 않자 실망이 뒤따랐지만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투망질을 서슴지 않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배인 아희 너한테 한 수 배우고 싶은데…"
혜주가 말한 선배란 의미는 성아희가 결혼을 3년 먼저 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녀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계속 집요하게 잡아채는 심혜주의 면상에다 따귀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럴수록 피해망상의 주체는 심혜주가 아닌 자신임을 알고 있기에 가급적이면 맞대응을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그만 생각지도 않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래, 어떤 걸 배우고 싶어. 후배가 안타까워하는데 선배인 내가 나 몰라라 할 순 없잖아."
심혜주는 짐짓 여유를 내보이는 그녀가 하도 얄미워서 차마 입에 담아선 안되는 말을 기어코 내뱉고 말았다.
"뭐랄까? 그러니까 우리 나이에 있을 법도 한… 불씨처럼 꺼질 듯 말 듯 하면서도 은근히 걱정되는 욕정 같은… 그런 거지 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입에서 토해지듯 불거진 한마디는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그건 당연히 남자로 풀어야되는 거 아니니?"
"…!?"
그만 심혜주는 남자 운운하는 그 한 마디에 아연해 하는 낯빛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둔기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지는 표정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심헤주로선 그녀가 그렇게까지 노골적인 투로 정곡을 찌르다시피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남녀간의 섹스나 부부간의 성적 관계에서 본다면 그 이치에서 크게 어긋난다거나 벗어나는 그런 성질의 말은 아니지만 친구인 아희의 입에서 불거져 나왔다는 게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다.
'이게 아닌데…'
사실 심혜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 안절부정 하는 아희의 반응을 내심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의표(意表)를 찌른 그녀는 이왕 내친 김에 무차별 공격으로 당황의 빛이 채 가시지 않은 심헤주를 코너로 몰아 세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여자에게 있어 옆구리가 허전하다는 표현은 남자 아랫도리 생각이 굴뚝 같다는 말과 동격이지. 그런데 혜주 넌 영감이 출장 중이라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적당한 상대를 물색하려고 하니 영감의 사회적 위치나 인격도 있고 하니 그것도 그렇고… 혜주 너로선 그런 탈선이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되니 양심과 윤리를 걸고 배척할 수 있는데 방금 네가 한 그 말의 핵심은 남편도 없는 아희 넌 여지껏 불씨같은 그런 욕정이 치밀 때 어떻게 해소를 했느냐 하는데 있었겠지. 그러니 굳이 아니라고는 하지 마!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게 혜주 너 다우니까."
"…!"
'계집애. 능구렁이 다 됐구나.'
심혜주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꺼집어내는 그녀의 말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심혜주가 속으로 끙끙 앓으며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음모를 앞당기게 하는 빌미가 되고 말았으니.
"그래. 사실 그게 의문이었고 의혹이었지. 여자가 여자를 보는 눈과 느끼는 직감은 정확하고 예리하다는 거 빈말이 아닐지도 몰라. 얼굴도 얼굴이지만 피부 탄력이 처녀적 못지 않은 걸 보면 누군가가 아희 널 위해 그렇고 그런 야한 봉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나 예감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랬다. 아예 대놓고 그렇고 그런 야한 봉사라 했다.
그것은 성아희의 예봉(銳鋒)을 꺾으려는 듯 극단적인 막말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심혜주의 정면 도전이었다.
비록 우회적인 표현이었지만 심혜주는 성아희가 누군가와 몰래 육체적 엔조이를 진행 중에 있다는 걸 믿어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짐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확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런 색깔있는 현장을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목격한 적도 없었다.
다만 혼자 사는 여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활달하고 생기가 있는 걸로 봐서 어쩌면 그 언젠가 시내에서 우연찮게 본 적이 있는 '그때 그 남자'와 지금도 은밀하게 아니 비밀스럽게 정기적으로 통정(通情)의 궤를 함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일 뿐이었다.
그건 여자로서의 어찌할 수 없는 질투이기도 했다. 특히 상대가 그 누구보다도 라이벌 의식이 강하게 아니, 민감하게 작용하는 성아희인 만큼 다른 것은 제쳐놓더라도 물질적인 조건 그 하나만 보더라도 자기보다 덜 풍족한 성아희가 어떤 면에서나 자기보다 한 차원 높다는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열등감이었다.
둘 사이에 빙하의 게곡을 훑고 지나가는 빙점 이하의 냉기와도 같은 침묵이 잠깐 흘렀다.
'혜주 너… 이건 아냐.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계집애… 고상한 척하더니 뜨끔했겠지.'
그녀는 심혜주의 생각 자체가 황당했지만 외간 남자와의 섹스를 의미하는 그런 모욕적인 발언까지도 서슴지 않는 저의가 자존심상 허락치 않았다.
"혜주 너, 이건 한마디로 상식 이하야! 이러는 저의가 뭔지 궁금하지만 매사를 그런 식으로 매도하는 지능지수가 더 문제야. 그런 쪽으로 머릴 돌리는 네 인격 또한 의심스러워… 그리고 이건 여자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의 충고야. 잘 들어 도움이 될 테니까… 세상사 다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기 마련이야. 혜주 너가 말하는 욕정이란 거 풀어주는 상대가 없어도 그걸 다른 방법으로 해소하면서 현실을 이겨내는 여자도 있을 것이고, 극기를 통해 아예 남의 얘기인 양 외면하면서 사는 여자도 있을 수 있어. 아니, 상상외로 많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감히 따귀 한 대 따끔하게 올려붙이지 못하는 자신이 가증스럽게 느껴지는 그녀였다.
심혜주는 그 말이 튀어나오리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대뜸 말꼬리를 물었다.
"설마 후자(後者)는 아니겠지?"
그녀는 콩 튀듯 즉각 반발하는 심혜주에게 소리없는 잔잔한 웃음을 입가로 흘리며 말했다.
"아니라고 하면 실망보다는 거짓말이라고 할 테지. 그 다음에는 위선자라는 악담까지 할테고."
"사족(蛇足)은 사양하겠어."
"그래. 이 시간만은 동질의 여자니까 있는 그대로 얘길 하지. 나… 내 나름대로 해소하는 그런 여자야 됐어?"
어디까지나 그녀 자신에 대한 기만이었지만 그게 한편으로는 심혜주의 음모에 과감히 동조하는 빌미로 손색이 없는 실언이기도 했다.
"해소하는 방법은?"
"…?!"
순간 그녀는 이 정도에서 그만 꼬리를 내리겠지 하는 희망이 허물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더 노골적으로 걸고 넘어지는 혜주의 저의가 내심 의심스러웠다.
마땅이 할 말을 추스르지 못한 그녀는 어떤 말이 나올까 하고 기대에 차있는 심혜주를 그저 빤히 쳐다본다.
심혜주는 내심 좀은 심했다 싶으면서도 의도적으로 내뱉은 이상 성아희의 반응을 지켜볼 참으로 마치 심문하듯 했다.
"왜?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진 않겠지."
"…?!"
그녀는 대꾸할 가치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불결하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심혜주는 그녀가 의외로 아무런 대꾸도 없자 실로 원초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왜? 한없이 우아하고 고매한 인격이라 차마 그 고상한 입에 담기가 뭐하다면 내가 대신할 수도 있지… 마스트베이션? 아니면 남자 거시기 닯은 대용품?"
미상불(未嘗不)! 현기증이 날 정도로 위험천만인 심혜주의 발상에 그만 성아희는 몸서리가 처지는 경악스러움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냉정의 시울을 놓고 만다. 
"혜주 너… 심했어. 그런 말까지 입에 담다니… 이건 언어도단이고 정신적 테러야! 더는 용납이 안 돼!"
하지만 이미 갈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마음을 굳힌 심혜주에게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핵심에서 도망가려고 하지마! 둘 중에 하나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그것만 말해. 둘 다 아니라는 농담 따윈 아예 안하는 게 건강에 좋아. 네 자신만 초라해지고 비참해지니까 말이야."
그녀는 미친 년 널뛰듯 다그치는 심혜주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심혜주, 친구 약점을 꼭 그렇게까지 안주 삼아 씹어야 되겠니? 유치하다 못해 추해!"
하지만 심혜주는 이미 친구의 개념이나 충고에 귀기울릴 만한 심리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오직 같은 여자라는 차원에서 미스터리 투성이인 친구의 현재를 해부해보려고 안달을 부리는 자가당착에 사로잡혀 있는 심혜주였다.
"이왕지사 추한 년으로 추락했으니 더 추해진다해도 그게 그거겠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마스트베이션을 하던 거시기 닯은 섹스 토이로 장난질을 치던… 거기에 어울리는 분위기란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
"…??"
그녀는 어떤 분위긴데 하고 되묻고 싶었지만 내숭 떨지 말라는 시비조의 말이 불거질 게 뻔할 것 같아 그만 도로 안으로 삼켜버렸다.
성아희의 별무반응(別無反應)에 심혜주는 속으로 고소(苦笑)해 했다.
'웃겨. 왠 내숭… 야, 성아희 정말 속보인다.'
마침내 심혜주의 음모가 베일을 벗는다.
"그 분위기란 거 별 거 아냐. 차원이 다른 문화영화일 뿐이야. 생비디오보다야 못하지만 분위길 살리는데는 그런대로 딱이지 아마."
심혜주가 지칭한 문화영화는 도색영화. 즉 포르노를 일컫는 말이었다. 남녀간의 색정적 교접을 노골적이다 못해 적나라하게 화면에 담은 음란물을 고상하게 표현한!
"…!"
그녀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기가 막혀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이 실감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아니, 유구무언이란 표현이 딱 어울릴 것만 같았다.
'변했어. 혜주가 변했어… 그래도 이건 아냐! 아냐!'
그녀는 믿을 수 없기에 실망보다는 연민을 먼저 생각했다. 조금은 섹시한 인상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순진한 구석이 남다른 친구 심혜주가 이런 지경에까지 타락(?)했다는 게 마치 꿈같이 느껴졌다.
그런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심혜주는 기회다 싶었는지 자신의 음모를 정교하게 다듬는다.
"어때? 말 나온 김에 우리 한 프로 때리는 게… 영감이 저번 일본 출장 때 하나 가져온 건데 눈여겨 볼만한 그림이 많은 하드 코어 테입이야."
"…"
그녀는 대꾸를 한다는 게 역겨울 것 같아 못 들은 척했다.
그걸 심혜주는 일방적으로 지나친 관심이 아니면 남다른 호기심으로 해석해버린다.
"얘, 우리 나이에 그런 취미도 건강에 나쁘진 않아… 탈선보다야 백 번 나은 거지 뭐, 자 따라와!"
'후후! 난 아희 널 알아. 알고 말고.'
그건 성아희가 거부하거나 피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음탕한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을 탈출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고 만다.
'잘못 온 거야… 그래, 여길 나가야 돼!'
하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 아냐! 그럴 필요까진 없어!
- 왠걸? 관심이라도 있다는 얘기니?
- 글쎄… 이러는 내가 어떤 색깔인지 나도 분명하지 않아.
어쩌면 심혜주의 타락 아닌 타락의 끝이 어딘지를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오기가 불쑥 치밀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피하지 않겠어… 혜주 너 자존심을 마지막으로 지켜주는 것도 그간의 우정의 대가니까.'
응해주기로 했다. 아무 군소리 않고 그래주고 싶었다.
심혜주는 슬그머니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앞서 걸어간다.
'후후!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가늠하기 어려운 희열이 온몸 구석구석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안방으로 뒤따라 들어간 그녀는 작년 겨울에 우연히 들렸을 때보다 판이하게 변해있는 방 안의 휘황찬란한 구조에 혀를 내두르는 감탄사보다 억장이 무너지는 한숨이 앞섰다.
온통 외제 투성이였다. 마치 향락의 극치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심혜주가 앉으라고 하는 금색 도금의 누런 황동 킹사이즈 침대를 한참 동안이나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힙을 내렸다. 쿠션 하나는 가히 속된 시쳇말로 죽여주는 그 이상이었다.
심혜주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잔뜩 흥분된 표정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낯선 곳에 굴러 떨어진 듯한 혼란에 휩쓸린 건 침대 전체를 집중적으로 내리핥는 진한 보라색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켜진 순간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안방의 이미지와는 심한 대조를 이루는 상식 밖의 장치였다.
그만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한 기분에 눈을 감아버렸다.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듯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자신에게 놀라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이건 변태 짓이나 다름없어!'
왠지 모르게 오기로 맞선 자신이 여지없이 후회스러웠다.
그때 심혜주는 보라빛 그물에 걸려 어쩌지 못하는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 끈끈한 눈빛은 마침내 덫에 걸린 먹이를 어느 부위부터 시식(試食)을 해야 좋을지를 놓고 망설이는 포만 속의 탐욕과 비슷했다.
'기다려 성아희… 별천지로 안내할 테니까.'
심혜주가 문갑 앞에소 꺼낸 비디오테이프를 VTR에 넣고 텔레비젼 체널을 맞추고는 무선 리모컨을 들고 침대로 가 성아희 옆으로 바싹 다가앉아 리모컨을 조작했다.
45인치 대형 와이드 화면에 나타난 맨 처음 그림은 감미로운 배경 음악이 깔린 아파트 거실이었다.
심혜주가 작품 해설에 열을 올린다.
"오리지널이라 우리 말로 더빙이 안 된게 흠이지만 본래 섹스란 말이 필요없는 행위예술이고 보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
그녀는 귀가 뚫려 있다는 게 원망스러웠다. 섹스를 행위 예술이라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관이다 싶었다. 섹스를 예술로 보는 그 황당무계한 심혜주의 무식이!
곧바로 화면에 영문 자막(字幕)과 함께 묘한 입체감을 주는 그림이 꽉 들어찼다. 이어 여자의 쥐어짜는 듯한 신음 비슷한 탁음(濁音)이 꼬리를 물더니 이내 클로즈 업으로 영상 처리된 화면의 전모(全貌)는 완벽하게 발가벗은 4명의 알몸이 서로 엉킨 채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교접 행위에 매달려 있는 그렇고 그런 전형적인 하드코어 포로노였다.
남자 둘과 여자 둘이었다. 단단한 근육질의 백인 1명과 흑인 1명 그리고 팔등신의 몸매를 유감없이 드러낸 흑인 여자 1명과 금발의 백인 여자 1명이 연출해 내는 해괴망측한 작태(作態)는 성적 충동에 불을 지피고도 남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특히 금발의 백인 여자가 흑인 남자의 성기를 혀로 유린하는 애무의 기교는 가히 압권(壓卷)이었다.
그녀는 신비(?)에 가까운 신기(新奇)의 환상에 몰입한 나머지 두 눈을 부릅 뜨고 그 연속되는 행위 하나하나를 내밀하게 음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만 속절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 두려움 속에는 가차없이 눈을 감아버리거나 밖으로 뛰쳐나가야 하는 배척의 안간힘을 행사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경멸이기도 했다.
그건 어쩌면 난생처음인 이 기상천외한 시각적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본능적으로 작용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부인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란 존재를 육체를 통해 육정이란 정체를 알고 있는 여자이기에 그랬다.
스토리도 없고 주제 또한 있을 리 없는 '문화영화'는 가면 갈수록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림들만 계속 토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동물적 본능이 구토질 하는 불협화음이 진풍경일 뿐 인간 자체가 추구하는 순수 음과 양의 성스런 조화를 이루며 추구하는 성의 본질은 결코 아니었다.
심혜주는 재탕에다 재탕을 한 테입이라 새롭다는 느낌은 무디고 둔했지만 외설이 아닌 예술(?)이라고 고집하고 싶은 그 행위를 볼 때마다 새로운 흥분이 온몸을 뜨겁게 달구며 욕정이란 이름의 갈증을 느끼곤 했다.
심혜주는 양다리가 서서히 흐물흐물 풀어지는 와중에도 곁눈질로 그녀의 표정을 은밀하게 훔치는 여유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그랬다. 그녀는 인정해야만 했다. 숨결이 가빠지고, 심장이 쿵쿵거리고, 마른 침이 절로 삼켜지고. 얼굴이 불에 덴 듯 달아오르는 신체의 변화를.
그건 위험한 반란이기도 했다. 오래 전 저편 저 너머로 멀리 달아난 줄 알았던 그 무엇이 새로운 모습으로 그녀 앞에 나타난 그 먼 옛날의 추억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심취해 있다는 표현이 궁색할 정도로 심각하게 빠져들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도 감히 섣불리 주제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유혹에 덫에 걸린 꼴이었다.
심혜주는 입술에다 침을 축이는 그녀를 목격하고는 그제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호호! 그게 정상이야… 성아희 너도 이럴 땐 어쩔 수 없는 여자일 뿐이야. 이런 분위기에 약해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여자란 말이야.'
그때 그녀는 혜주가 스커트를 발목까지 내리고 곧바로 팬티까지 벗어던지는 일련의 동작을 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모른 척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분명히 들었다.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메마른 신음소리를 입가로 흘리는 혜주를. 그 소리는 화면 가득 흘러 넘치고 있는 두 여자의 신음소리와 흡사했다.
이윽고 심혜주는 성적 본능이 재촉하는 감성의 나락 끝에까지 다다라 있었다. 왼손을 뻗어 그녀의 오른손을 잡는다. 그녀는 뿌리치지 않았다. 아니, 그냥 내버려두었다.
거기에 잔뜩 고무된 심혜주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자기의 허벅지 위에다 살며시 내려놓았다.
순간 그녀는 손바닥에 들러붙는 혜주의 보드라운 살결의 감촉이 그리 싫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의 한 손이 본의 아니게 심혜주의 은밀한 와이 라인에까지 미끄럼을 탔다.
그녀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220볼트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체모(體貌)의 까칠한 감촉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경감(生硬感)에서 비롯된 전율이었다.
그녀는  무심결에 혜주를 쳐다보았다. 심혜주의 호흡은 심하게 헝컬어져 있었고, 고개는 뒤로 젖혀져 있었고, 두 눈의 초점은 희미하게 풀어져 있었다. 이미 화면 속의 행위 예술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혜주의 무성한 거웃을 가리고 있던 그녀의 손에 짧고 강한 압박이 가해졌다. 그만 그녀는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리는 듯한 아찔함에 여지없이 휘청거렸다.
그때 그녀는 분명히 보았고, 확실히 들었다. 그리고 실감나게 느꼈다.
심혜주의 온몸이 안쓰러울 정도로 좌우로 틀어지는 동시에 입에서 짧게 끊어지는 비명이나 다름없는 신음 소리를!
이미 심혜주는 이성을 잃는지 오래였다. 눈을 감은 채 하얀 블라우스와 핑크색 브래지어를 보란듯이 훌훌 벗어던지고 있었다.
혜주의 광적인 마임에 그만 심한 모멸감을 느낀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인내해 온 분노를 터뜨리고 만다.
"개 같은 년!"
친구로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내뱉으며 욕정에 떨고 있는 혜주의 몸 안 깊숙한 곳에서 빠져나온 비릿한 냄새의 물기가 묻어 있는 오른손으로 혜주의 왼쪽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짝!"
심혜주의 얼굴은 한쪽 방향으로 격하게 쏠렸고, 두 손으로 풍만한 젖가슴을 쥐어뜯고 있던 행위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결국 몽롱한 환상에의 쾌감을 졸지에 절도 당한 심혜주는 이런 모욕까지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는지 허탈한 표정으로 마주 서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분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인격 모독이나 다름없는 악담을 굴절 없이 아니, 거침없이 토해버렸다.
"길거리에서 흘레를 붙는 발정난 개만도 못한 계집애! 잘 들어 심혜주, 이건 네 자신을 죽이는 더러운 작태나 다를 바 없어. 심혜주, 정말 기가 막혀! 이게 그래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알고 있는 혜주 너라니…"
"…"
심혜주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달리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아직 몸안 구석구석 똬리를 틀고 있는 흥분의 찌꺼기가 따귀까지 맞은 자신을 인정하거나 용납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녀의 냉정한 심판은 계속 이어졌다.
"잘 들어. 오늘로 심혜주란 친구의 이름은 내 기억 속에 없어. 넌 친구일 수가 없어, 동정의 여지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타락한 여자일 뿐이야. 물론 나름대로의 이유나 변명은 있겠지… 하지만 우린 두 발로 걷는 직립 인간이야. 네 발로 걷는 동물과 다른 점은 이성이 있기 때문이야. 무슨 뜻인지 그것마저 애매하면 혜주 넌 인간이기를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야… 미안해. 개 같은 소리 나불거린 거… 아무튼 네가 말하는 문화영화, 행위예술 많아 보고 많이 즐겨."
성아희는 충고와 함께 절교를 선언하고 바람처럼 휑하니 방을 나가버렸다.
그제야 심혜주는 침대 위로 쓰러지며 진한 오열을 뿌리고 만다.
안방의 행위예술은 보는 관객이 없어도 성감대를 마비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사실적인 장면들을 계속 연출하고 있었다.
심혜주는 여전히 그 자세로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은 1년 전부터 남자로서의 구실이 부실(不實)한 남편이 부부 관계를 할 때마다 그걸 보면서 아내인 자신을 상대해 온 남편의 상습적(?)인 리드에 자신도 모르게 그걸 보지 않고는 실감이 나지 않는 체질로 변해버린 자신을 꾸짖는 질책이기도 했다.
사실 남편의 아내이기 전에 여자로서 섹스에 대한 불만을 느끼고 있던 심혜주는 남편이 음란 비디오를 통해 남자로서의 성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절정을 수차례 만끽했던 것이다.
결국 심혜주는 욕정에 새롭게 눈을 뜬 여자처럼 섹스를 요구하는 횟수가 잦았고 급기야는 포르노 주인공들이 구사하는 변태적인 체위까지 강요하는 속물적인 근성으로 발전했다.
그 무렵 남편은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인 심혜주의 가학성 변태성욕이 자신의 책임이며 실수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남편은 아내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탈이성적 행위에 동조하기보다는 스스로 배척해버리는 현명을 택하고 말았다.
근래 들어 사흘이 멀다하고 해외출장이 빈번한 것도 아내의 분별없는 성적 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아닌 도피였다.

***

"따르릉!"
지수가 그의 전화를 받은 것은 밤 11시경이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그의 전화를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지수로서는 반가움이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어디 약속이라도 있었던 모양이구나."
전화를 여러 번 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네, 선생님,"
생기를 잃어버린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였다.
"오늘 권 사장을 통해 얘길 들었다… 요 근래 들어 예전의 지수가 아니라고 하더군. 그 친군 지수가 말한 그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그런 쪽으로 판단이 되지 않아. 여린 네 마음이 용납할 수 없는 나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아니에요, 선생님."
"자신의 순수 감정을 속인다는 건 현명하지 못해… 나로선 그럴 수밖에 없는 냉정이었지만 지수 넌 이 선생님이 야속하다는 감정 이외는 가지지 않았을 거야. 메모 한 장만 남기고 나와버린 이 선생님을 두고 말이야."
"아… 아니에요, 선생님."
그만 눈물이란 게 두 볼을 적신다.
'그래요. 선생님이 야속했어요.'
그날 지수는 아침 일찍이 나설지도 모르는 선생님에게 아침 밥이라도 지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 6시경에 일어났었다.
시장에 갈려고 현관문을 내려서다 무심결에 눈길을 준 신발장에 있어야 할 선생님의 구두가 없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착시(錯視) 현상이겠거니 하고 눈을 의심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에 한동안 넋나간 듯한 멍한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지수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노크도 없이 큰방 문을 열었다.
"선생님…"
지수는 텅 비어있는 침대를 본 순간 그만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굳어져버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샘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방 안은 말끔했다. 하룻밤을 묵고 간 선생님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침대 가장자리에는 잠옷과 속옥 한 벌 그리고 양말 1컬레가 전날 밤의 그 모습 그대로 놓여 있었다.
메모지는 잠옷 바로 옆에 있었다.
지수는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른 후에야 선생님이 유일하게 남기고 간 메모를 읽어 내려갔다.

<지수에게.
놀라움보다는 실망이 앞섰겠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선생님을 이해해 주면 좋겠구나.
주간 회의도 있고 해서 일찍이 출발해야겠구나. 지수를 깨울까도 생각했지만 번거로울 것 같아 이 메모로 대신할까 한다.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다거나 달리 비약하는 그런 나약한 면을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게 이 선생님의 바람이다.
모쪼록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매진해 주길 바란다.>

지수는 그만 침대 위로 얼굴을 묻고 가녀린 흐느낌으로 그 누구를 원망했다. 그 냉정함이 아니. 그 굳게 닫혀 있는 마음의 벽이 미웠다.
"지수 너, 울고 있구나."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옹졸했어요. 죄송해요 선생님, 다시는 그런 모습 보이지 않을 게요."
겉으로는 그랬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경멸하고 있었다.
'바보 같은 계집애. 왜 말 못해! 왜 솔직하게 마음 속에 담아둔 말을 못해. 뭐가 두려운 거야? 바보! 천치!'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그런 용기를 가진다는 게 더 어려웠다. 소녀가 아닌 숙녀로서의 진실된 그 무엇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다는 게 지수에게는 막연한 환상 그 이상의 의미일 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몇 번이고 꼭 그래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지만 선생님을 대할 때마다 그런 충동이란 게 눈 녹듯 사그라지는 안타까움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건 어쩌면 지수에게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의도적으로 거리감을 두는 그의 처세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수 널 나무란다거나 앞으로 그런 소침해 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그런 뜻으로 전화한 거 아냐."
"…"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렇게 전화를 준 것만으로도 이 지순 행복한 걸요.'
"그리고 지수 성의를 무시한 건 그런 걸 받아들일 만한 마음의 준비란 게 덜 성숙했기 때문이야. 어쩌면 그 어떤 변화를 내 스스로 경계해야한다는 이 선생님의 아집 탓인지도 모르겠구나."
"…"
'알고 있어요, 선생님… 선생님의 가슴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지수야. 서운함이란 건 그만큼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 오늘의 서운함을 내일의 여유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선생님,"
조금은 마음의 그늘이 걷힌 듯한 목소리였다.
"그럼 됐어. 이제 이 선생님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구나… 그리고 다음 주에는 토요일 저녁 8시쯤 도착할 거야.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조기 매운탕이면 족해… 너무 늦은 시간이구나, 이만 끊어야겠다. 문단속 잘하고 자는 거 잊지말고."
"네, 선생님. 안녕히 주무세요."
전화를 끊은 지수는 그날 이후 마음 속에 앙금처럼 담아두었던 선생님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내동댕이 치고 새롭게 얼굴을 내민 들뜬 기분에 두 손을 가슴에다 모았다.
'일요일 오전이 아니고 토요일 저녁이라 했어.'
결국 한동안 지수를 괴롭혔던 우울한 그림자 놀이는 그의 전화 한 통화로 말끔히 지워진 셈이었다.

***

그녀는 자정이 넘었는데도 잠을 쉬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는다는 게 두려웠다. 눈만 감으면 난잡한 교미(交尾)에 지나지 않는 장면들과 심혜주의 야릇한 관능의 몸짓이 선명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녀는 천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올누드로 침대를 빠져나와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 스탠드 불빛 탓인지 샅의 거웃에 더 진한 암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어깨 선이며 젖가슴의 양감이며 실팍한 둔부로 이어지는 허리의 곡선미는 불혹(不惑)의 여자로 보기에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 어디에도 군살 하나 없이 전제척으로 균형이 잡혀 있었다.
그녀는 거울 속에 갇힌 자신을 훑어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 왜? 혼자 간직하기엔 아까운 몸이라고 생각해?
- 아니라고는 안 해.
- 전에는 이렇게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잖아. 그래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야릇한 예감이 들어.
- 아까 본 그 금발 여자 몸매 기억 나?
- 흑인 여자도 빠지지 않던데 뭐.
- 나도 그런 자세가 나올까?
- 침대 위에서 꿇어앉자 엎드린 채 뒤에서 그 짓하던 흑인 남자를 쳐다보는 그런 자세 말이니?
- … 한 번 해보고 싶어,
- 후유증인가?
- 그냥 한 번 해봤으면 싶어서 그래.
- 네맘이잖아. 하고 싶다는데 누가 말려.
그녀는 냉큼 침대 위로 올라가 거울이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에서 그런 자세를 취했다.
- 어때? 비슷한 거 같애?
- 뒤에 남자만 있으면 영락없이 원본 복사판인데 그래.
- …!
- 너 지금 그거 하고 싶은 거지?
- …?!
- 두려운 모양이구나?
- 그만 두지 못해!
- 내숭 떨 거 없잖아. 욕정이니 섹스니 하는 거 경우에 따라선 양심만큼 순수한 거야. 그러니 본능이 이끄는대로 한 번 가 봐!
- 그게 가능할까?
- 내 눈에는 넌 지금 한계를 느끼고 있어. 네가 말하는 극기의 한계를 말이야!
"꺼져!"
그녀는 그만 버럭 고함을 지르며 베개를 집어 거울 속 분신을 향해 냅다 던졌다, 그리곤 그지없이 넓게만 보이는 침대에 온몸을 내던지다시피 했다.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하반신 은밀한 그곳에 파문처럼 번지는 미미한 떨림을!
"아냐! 이게 아냐! 아니란 말이야!"
강한 부정으로 맞섰지만 이제는 아예 온몸 구석구석 번지는 낯익은 불청객의 음흉함은 그 농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금방이라도 소리가 되어 터져나올 것 같은 기세로 입가에 걸려 있는 비음(鼻音)을 안으로 삼키려는 안간힘이었다.
고개를 좌우로 휘젓는다. 뭔가를 떨쳐버리려는 듯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몸은 이미 그녀의 의지에 반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젖가슴의 탄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탱탱한 윤기가 흐르는 허벅지 안쪽으로 뭔가가 스멀거린다. 입술은 백치미처럼 떨어져 있다. 얼굴이 불에 덴 듯 화끈거린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두 손에 축축함이 김처럼 서려있다.
그녀가 그 누군가를 불렀다. 희미했기에 자신도 듣지 못했다.

***

혜주의 전화를 받은 그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끊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풀이 죽어 있는 목소리에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다 싶어 의도적으로 퉁명스럽게 대꾸를 했다.
"혜주 너, 아직 친구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정말이지 뻔뻔해 그 낯짝이 말이야."
"… 그땐 미안했어… 사과라도 해야겠기에…"
"미안? 사과? 그게 무슨 뜻인지 국어사전을 봐야겠는데 그래."
"알아…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아희야. 사과할 게. 진심으로… 이 말 하려고 전화했어. 받아 줄 수 있지?"
"…?!"
그녀는 계속 고자세로 대하고 싶었지만 한 주가 지난 지금에 와서 그런다는 것도 그렇고 사과 전화라는 말까지 한 이상 코너로 모는 것도 좀은 심하다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희 너 기분 충분히 이해해. 나에 대한 감정도 감정이지만 유쾌하지 않았다는 거 알고 있어…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믿어줘. 결코 고의는 아니었어, 그런 날 이해한다는 게 쉽진 않겠지만 언젠가는 이해가 되리라 믿어."
"…!?"
그녀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혜주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왠지 부담스러웠다.
"아직 용서가 안 되는 모양이구나… 물론 힘드는 줄 알아… 그런데 아희야, 난 널 잃는 게 싫어. 죽는 것보다 싫어. 정말이야."
"…?!"
그녀는 괜스레 이상야릇해 지는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런 성격이 아닌데…'
"우린 누가 뭐라고 해도 남다른 친구잖아… 난 그걸 한 번도 소홀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아희 너도 그것만은 인정할 거야… 그래도 용서가 안 된다면 미안해… 이미 끝났는데 이런 전화해서 말이야."
그제야 그녀의 입이 열렸다.
"아냐. 혜주 네가 순수하지는 못했지만 그게 우리 사이에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우린 네 말대로 남다른 친구니까… 그리고 따귀 때린 거… 미안했어,"
그녀는 전화상이지만 심혜주가 솔직한 표정, 진솔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내뱉는 말일 거라고 믿고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쉽게 해버렸다.
그건 어쩌면 심혜주의 사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진하게 와 닿은 탓인지도 모른다.
"아희 네가 미안해 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해… 난 친구의 진실된 충고로 받아들였으니까 말이야."
"그럼 됐어,"
"그럼 우리 전처럼 친구하는 거지?"
다시 친구 하자는 그 말에 그녀는 대뜸 조건부로 대응했다.
"대신… 다시는 그런 지랄같은 작태만 삼간다면 우린 친구야. 약속해."
"약속할 게."
혜주는 한 푼 어치의 뜸도 들이지 않고 그녀가 그런 말을 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래, 고마워."
하지만 그녀는 있을 법도 한 사족(蛇足)은 커녕 시원스럽게 나온 심혜주의 대답이 신경 한 모서리에 거슬리는 기분만은 지워버리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한 잔 사고 싶은데 어때?"
예전의 심혜주 목소리였다.
"나쁘진 않겠지."
"고마워, 아희야. 거절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럼 날 잡아 다시 전화할 게. 기대해도 좋을 거야. 안녕!"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문득 그녀는 심혜주와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과의 전화였고, 다시 친구 하자고 했고. 날 잡아서 한 잔 하자고 했다. 그것 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저 단순한 전화에 지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꺼림칙한 기분만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 왜? 개운치가 않는 모양이지?
- 모르겠어… 받아주는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 그렇긴 하지만… 20년 우정이란 게 그리 쉽게 끊어지는 건 아니잖아.
- 글쎄… 이런 전화 할 혜주가 아니라는 게 그냥 마음에 걸릴 뿐이야.

***

퇴근길에 지수는 가까운 재래 시장 어물전에 들러 물 좋은 조기 세 마리와 두부 한 모 그리고 마늘 조금을 샀다. 마른 김도 샀다.
발걸음이 하늘을 나를 듯 가벼웠다.
아파트 단지 내 슈퍼마켓에서 맥주 3병도 샀다. 안주로 할 마른 오징어 한 마리와 마요네즈도 샀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슈퍼 주인이 씩 웃어보이며 아는 체를 했다.
"새댁, 간만에 보는구먼,"
지수는 처음 들어보는 새댁이라는 말에 당황했고 한편으로는 쑥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이거 계산해 주세요,"
"새댁,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그래요. 오늘은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거든요.'
지수는 큰 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남에게 공개해선 안 되는 혼자만의 비밀이라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네, 아저씨."
"새댁은 얼굴도 곱상하지만 말하는 것도 차분해서 듣기가 좋아. 신랑이 성질 낼 일이 없겠어. 허허! 내가 주책이지, 새댁? 가만 있자… 이게 얼마나 되나."
지수는 이제는 신랑이란 말까지 서슴지 않는 슈퍼 주인이 황당했지만 그다지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계산을 치르고 나온 지수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벌써 저녁 7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파트 숭강기가 오늘따라 느리게 느껴졌다.

***

바로 그 시간. 그는 막 서부산 톨케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고속도로 교통 정보를 들어 볼 참으로 라디오를 켰다. 틀자마자 귀에 익은 흘러간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최성수'의 '남남'이었다.
그가 그만 라디오를 거칠게 꺼버렸다. 그리곤 앞서 달리는 차에 추월 신호를 보내고는 이내 핸들을 꺾어 추월선으로 차를 몰았다.
양미간이 극도로 좁혀지더니 깊게 깨문 입술 주위로 파리한 떨림이 파문처럼 번졌다. 그 무엇을 본능적으로 떨쳐버리려는 안간힘을 엿볼 수 있는 그런 표정이었다.
또 한 대를 이번에는 추월 신호도 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월했다. 졸지에 뒤로 처진 꼴이 된 대형 화물차가 비상 조명등을 신경질적으로 여러 번 연속적으로 깜박거렸지만 그는 미안하다는 뜻의 손 한 번 들어보이지 않았다.
'이건 아냐! 없어! 없어!'
뭐가 아닌지 뭐가 없는지 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런 독백이었다.

***

지수는 차임벨 소리가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파트 구석구석 말끔히 청소도 했고, 저녁 식탁 준비도 마무리가 됐다.
8시 5분이 지났다.
'토요일이니까 차가 많이 밀릴 거야.'
지수는 주차장으로 나가 기다릴까도 생각했지만 주위의 시선도 있고 해서 관두기로 했다.
거실에는 클래식 선율이 잔잔히 깔리고 있었지만 지수의 귀에는 벽걸이 시계의 초침이 쏟아내는 째깍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8시 10분이다. 불현듯 혹시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서둘러 오시느라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아냐! 못된 계집애. 방정스럽긴…'
'오고 있는 중이라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실텐데…'
오만가지 생각이 사로잡혀 있는 동안 시간은 8시 15분을 지나고 있었다.
지수는 안절부절 했다. 혹시나 정지된 시간 속에 갇히지나 않았나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거실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며 수초 간격으로 벽시계를 쳐다보는 지수였다.
바로 그때였다. 그렇게 학수고대 하고 있던 차임벨 소리가 마침내 지수의 귀를 때렸다.
지수는 구원의 빛을 보는 듯했다. 그늘져 있던 표정을 금세 환하게 피어났고, 입고 있는 옷매무새를 다시 추스렸다.
"선생님!"
지수는 주르르 미끄럼을 타듯 현관문으로 달려가 급하게 문을 열었다.
그는 입가로 미소를 머금은 채 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조금 늦었지."
그는 한 손에 붉디붉은 장미꽃 다발을 들고 있었다.
"아니에요, 이렇게 오셨잖아요!"
감격에 북받친 목소리였다.
지수는 와락 그의 가슴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장미가 다칠까봐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자, 받어. 스물 두 송이야."
어쩌면 그는 공식적인 야간 첫 방문(?)의 의미를 지수 나이만큼의 장미꽃으로 대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지수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공손히 내밀었다. 오늘따라 선생님의 깊고 자상한 시선을 마주 대한다는 게 왠지 두려웠다.
'왜일까?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콧잔등에 찡한 울림이 번지더니 금방이라도 하얀 눈물이 방울져 붉은 꽃잎 위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기쁜데도 눈물을 보인다면 선생님이 나무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장미꽃 다발에 얼굴을 묻는다. 장미 특유의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자식."
그는 지수의 가녀린 양 어깨에 걸려 있는 약한 떨림을 살며시 잡고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선생님!"
지수는 장미가 아파할까 봐 양손을 그의 등 뒤로 돌려 선생님의 가슴 깊숙이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이란 게 두 볼을 타내린다.

***

그녀는 대연동 고개를 지나 못골 시장을 막 지나치고 있었다.
- 어디 가는 거야?
- 해운대?
- 이 시간에? 이런 센티한 면도 있었나?
- 미친 년으로 보여?
- 이런 적이 없었잖아.
- 하긴…
- 그래.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는 거니?
- 그냥 힘들어서 그래.
- 뭐가 그리 힘들어?
- 그냥… 밤이 무섭고 두려워. 나 혼자 상대하기엔 너무 강해. 억지로 버텨보지만 그럴수록 더 견디기 힘들어. 백기를 들어 항복을 한다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애. 그래서 이렇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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